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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융합공학과 이우근
글로벌 반도체 연구 34년, 세계적 석학의 귀환
지난 8월,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 미국과 중국에서 34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이우근 교수다. 이 교수는 반도체 집적회로(IC)와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로,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논문 180편 이상을 발표했으며 24건의 미국 특허를 보유한 저명한 석학이다. 현재 IEEE 펠로우(석학회원)이자 매년 전 세계에서 50명을 임명하는 펠로우 선출위원회 위원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 국적으로는 최초로 IEEE 고체회로협회 저널 편집장을 역임하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석사,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6년부터 중국 칭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 왔다. 이 외에도 한인 과학자 간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절감해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CH) 창립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상을 받으며 학계와 사회 전반에서 깊고 넓은 활동을 이어왔다. 오랜 해외 생활을 끝맺고 우리 대학에 선물처럼 찾아온 그를 만나, 한국으로 돌아온 소회와 앞으로 성균과 함께 그려갈 미래를 물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8월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우근입니다. 한국에서 학부와 병역을 마친 뒤 미국으로 떠나 유학 및 회사 생활로 15년을 보냈습니다. 이후에는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19년을 보내고, 다소 벅찬 마음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 | 34년간 해외에서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시다가, 올해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로 한국 학계에 돌아오셨습니다. 긴 시간을 건너 한국 학생들을 만나게 되신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이전에 서울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한 학기 동안 강의한 경험이 있었어요. 하지만 학부생은 처음 만나는지라 어떻게 잘 교감할 수 있을까 긴장도 되었습니다. 동시에 밝고 예의 바른 한국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도 컸습니다. | 아울러, 한국으로 돌아오시면서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와 인연을 맺게 되신 계기도 궁금합니다. 성균관대학교 반도체 분야에 제가 아는 선후배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기도 하고, 시스템반도체와 관련한 성균관대학교의 향후 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귀국을 신중하게 고려하던 중 성균관대학교에서 초청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신생학과인 반도체융합공학과에 관해서 알게 되었고 제가 시니어 교수로서 이 분야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합류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하시고 두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반도체융합공학과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어떠셨나요? 얼마 전 반도체융합공학과 학생들이 첫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그때 저도 저희 과 교수님들과 함께 잠깐 참가했었는데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학생들의 순수하고 활기찬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또 대학원 진학 면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갖고 있는 장래에 대한 비전과 생각들이 제가 학생일 때와 비교해서 더 성숙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일부 대학원생들과는 국제학회 논문 준비에 도움을 주면서 미팅도 하고 점심도 함께했는데,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기술적인 논의를 나누니 감회가 새롭고 교감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 중국 수능 ‘가오카오’의 장원이 입학하는 명문대인 칭화대학교에서 집적회로학원 교수로 계셨어요. 2006년, 중국으로 향하셨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15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고려하던 중, 급격히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고 3년 정도 직접 경험해 보면서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칭화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교수급에서는 천인계획과 같은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고, 방문 교수 자리밖에 없던 상황이라 제가 지원했을 때 칭화대 측에서도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는 장기적으로 중국 전문가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현지에서 한중 학술 교류와 자문 활동,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 창립 활동 등 연구 외적인 일에서도 여러 가지 역할을 맡으면서 19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 칭화대학교 재직 당시 얻으신 학문적 인사이트나, 쭉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경험이나 추억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임팩트 있는 논문 한 편은 본인의 커리어에 평생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히 제1 저자로 그런 논문을 내는 것은 박사과정 또는 박사 후 과정에 있을 때 기회가 많습니다. 저는 일리노이대학에 3년 반 있다가 떠난 뒤 회사에서 정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박사 논문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논문으로 디자인한 칩 테스팅 결과가 안 좋아서 학위를 거의 포기할 뻔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회사에서 제 논문 내용으로 제품까지 개발되고 그 성과를 저널과 유명 학회에 발표하게 되면서 7년 반 만에 학위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었지만, 회사에서 4년간 제품 개발부터 양산까지의 경험은 저에게 소중한 커리어 자산이 되었고 제가 IEEE 펠로우가 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연구 개발은 직진보다 여러 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했고, 그 후 학교에서도 단기 논문 성과보다는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연구 방향을 크게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학에서는 유학생도 pre-defense 후에는 더 이상 학교에 등록하지 않고 회사에 풀타임으로 바로 취직하면서 박사 논문을 준비할 수 있었다. | 한국 국적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고체회로협회 저널 편집장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IEEE 내에 수많은 협회가 있고, 그중 고체회로협회(SSCS)의 정규 저널로는 JSSC(Journal of Solid-State Circuits)와 OJ-SSCS(Open Journal of the Solid-State Circuits Society)가 있습니다. 현재 저는 이 중 OJ-SSCS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창간 때부터 부편집장을 맡았고, 다른 저널의 부편집장 경험도 있어서 해당 저널 편집장으로 선임된 것 같습니다.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권에서 고르게 구성된 20명의 부편집장과 함께 저널 심사 및 스페셜 섹션 구성 등을 주로 담당하고 있으며, 저널의 영향력 지수를 더 높이기 위하여 노력 중입니다. ▶ OJ-SSCS Editorial Board - IEEE Solid-State Circuits Society ◀ | 교수님께서 연구해 오신 반도체 집적회로(IC)와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분야를 소개해 주세요. 인간의 두뇌에 비유한다면, 메모리 기능 외에 사고, 대화, 시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기능을 담당하는 반도체입니다. 제가 연구한 분야는 주로 무선 통신과 유선 통신 송수신기 시스템에 필요한 저전력 회로들을 설계하거나 저전력 송수신기의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칭화대에서 중국 회사들과 일할 기회는 없었고 대부분 한국 대기업과 산학협력을 했습니다. 주로 차세대 무선 통신 송수신기에 들어가는 회로들을 연구했습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24개의 미국 특허도 집적회로 설계에 관한 것이고, 이전 미국 회사 재직 시 출원했거나 아니면 칭화대 재직 시 삼성전자와 같이 출원한 특허들입니다. |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적이지만,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시스템 반도체, 즉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아직 도전 과제가 많습니다.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닦아야 할까요? 국내 대기업 취업뿐만 아니라, 창업도 하고 해외 기업에서 일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인재 양성이 필요합니다. 해외 글로벌 기업에서 3~5년 일한 후에 한국에 돌아오면 크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10~20년 뒤 돌아온다면 더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현재 중국은 그러한 인재들이 활약하며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교단에서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지도하셨습니다. 바다 건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향하시는 교육 철학을 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학부생들에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많은 시도와 도전을 하라고 강조하고, 석사생들에게는 실질적인 경험을 중시하고, 박사생들에게는 회로 설계 한 번의 실수로도 연구 결과가 1년이 지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할 줄 아는 전문가적 자질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동기부여입니다. 연구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학생이 학점이 높은 학생보다 훨씬 더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은 세계 어느 대학이든 같다고 봅니다. 박사생들의 경우 기술적 논의를 수년간 함께 하다 보면 졸업할 무렵에는 오히려 제가 학생에게 배우게 되고 그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 앞으로, 교수님과 반도체융합공학과 학생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여러 분야의 교수님들이 같이 있는 반도체융합공학과의 특성상, 회로 설계/소자/장비 등 반도체 관련 여러 과목이 개설되어 있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분야인 회로 설계에서 글로벌 협업 과목들도 개설해서 학생들이 글로벌 성균인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소중한 시간을 함께할 성균관대학교 공학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미국과 중국에서 직장을 세 번 옮겼는데, 항상 직장 생활이 힘들 때가 아니라 편하고 윤택할 때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했습니다. 성균관대 공학도들도 담대한 도전 정신으로 본인만의 훌륭한 커리어를 디자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No. 90
- 2025-10-29
- 7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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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아(기계공학과), 채상훈(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
성균의 가르침을 세계로
■ 임페리얼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기계공학과 김장아 교수 - 2007년 기계공학과 입학 - 2017년 SAINT(성균나노과학기술원) 박사학위 취득 - 2017~2023년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박사후연구원 - 2023년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조교수 부임 ▲ 2018년 Great Exhibition Road Festival에서 연구실 투어를 진행하는 모습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영국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기계공학과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장아입니다. 햄린센터(The Hamlyn Centre for Robotic Surgery)에 소속되어, 빛과 마이크로·나노기술을 활용한 센싱과 미세로봇공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07학번으로 성균관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해, 2017년 SAINT(성균나노과학기술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10년을 성대에서 보냈습니다. 그 시간은 제 학문적 뿌리가 되었고,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박사후 연구를 이어가며 의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mini lab (micro-nano innovation lab)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성대에서 보낸 10년은 제 청춘 전부였고, 지금의 저를 만든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우선, 연구실에서 전례가 없던 그래핀 연구를 혼자 시작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가는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박사 과정 중에는 고등학생과 학부생 팀을 지도할 기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제 연구주제에서 파생된 주제보다는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주제를 직접 찾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화장품 자외선 차단제 연구라든지,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구조색(structural colouration) 연구 같은 프로젝트였죠. 이런 경험들이 지금 제가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고 협력 연구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오랫동안 연구실 랩장을 하면서 운영을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연구실 관리, 행사 준비, 교수님과 동료 간의 소통을 맡으면서 관리체계와 사람을 이끌고 조율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 연구실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도 그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학부시절 교양수업에서의 배움도 지금까지 제게 남아 있습니다. 특히, 성대만의 개성이자 강점인 ‘유학사상’ 수업에서는 처음 철학을 접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었습니다. 서양음악사, 대중예술, 미술철학 같은 수업에서는 전공 밖의 시야를 넓히며 연구자이자 개인으로서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중요한 순간마다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음악이나 예술에서 생각할 거리를 얻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대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다양성 덕분에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 인생의 동반자(남편)도 성대에서 만났습니다. 학문과 인생을 모두 준 곳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 (왼쪽) 2010년 학부 마지막 학기, 도서관 카페에서 ‘가스터빈’ 시험공부를 하던 때 (오른쪽) 2015년 연구실 책상에서 연구중인 모습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 임용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성균관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는 당시 가장 핫한 주제였던 그래핀 연구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좇아야 하는 주제는 제 성향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차분히 원리를 깊이 탐구하고, 연구의 사회적 효과가 뚜렷하게 보이거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몰입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박사과정 말미에 아산병원과의 협력 프로젝트에서 의료용 카테터 센서를 개발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연구가 실제로 사람들의 건강 문제 해결에 연결되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의공학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박사 후 연구도 이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첫 포닥을 시작한 곳은 임페리얼 칼리지의 햄린센터로, 의료용 로봇과 의료기기 개발에 주력하는 연구소였습니다. 3년 계약으로 대형 연구프로그램에 참여해, 감염 진단용 광섬유 센서를 개발하는 과제를 맡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3D 나노프린팅 기술로 광섬유 끝단에 나노구조체를 형성해 원격·실시간 바이오마커 감지가 가능한 센서를 제작했고, 이 연구는 학술지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표지 그림이 저의 만 30세 생일에 실린 호(issue)에 나와, 특별한 생일선물이 된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연구실이 장기간 닫혔습니다. 실험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 시기에 현미경 이미지 분석과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로 논문을 낼 수 있었고, 이후 2년 계약을 연장해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추가 계약이 마무리될 무렵, 재료과·생명공학과의 스티븐스 그룹에서 질병 진단용 나노센서 개발 연구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그룹은 기능성 소재와 의공학적 응용 연구를 활발하게 이끌며, 규모도 커서 다양한 기회와 협력이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저변을 넓힐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포닥 생활을 시작하면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한 단계, 어쩌면 몇 단계는 폭풍 성장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 시기에 영주권도 취득하게 되어 생활적으로도 안정감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연구를 이어가던 중, 과거 함께 협업했던 교수님의 소개로 기계공학과에 교수 공고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임페리얼을?’이라는 자기의심이 들었지만 곧 ‘밑져야 본전. 지원서 쓰는 연습이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서류 심사를 통과했고, 이틀에 걸친 인터뷰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임용을 위해 특별히 초점을 맞춘 부분과 임용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교수가 될 거라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실험하고 배우며 평생 연구자로 살아가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그려졌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연구자가 배운 것을 후학과 나누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것도 자기실현의 한 형태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기회가 찾아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인터뷰를 준비할 때는 불안하고 긴장이 컸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남들과 비교하려 하지 말고 그냥 네 자신을 보여줘라(Be yourself). 그게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단순한 조언이었지만 제 머리를 크게 울렸습니다. 인터뷰에서 그 마음가짐으로 임했고, 제가 가진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 임용 면접은 처음이었고, 미숙하고 많이 떨었던 탓에 결국 첫 시도에서는 오퍼를 받지 못했습니다. 몇 달 뒤 예상치 못하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최종 합격자가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지원자들을 다시 검토하게 되었고, 뜻밖에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미 한 번 떨어진 경험 덕분에 오히려 편한 마음이었고, ‘안 되면 원래대로 내 길을 가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덕분에 힘을 빼고 당당하게 제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이번에는 좋은 평가로 이어져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준비된 스펙이나 공식적인 전략보다는 그 순간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게 결과적으로 잘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박사 졸업 이후에는 연구 독립을 위해 지도교수님과는 더 이상 공동 논문을 쓰지 않았고, 포닥 시절에도 제가 직접 발굴하거나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연구들이 많았는데요. 그 결과 연구 실적이 일시적으로 더뎌 보일 수는 있었지만, 독립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증명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제 인터뷰에서도 제가 이 연구들을 직접 이끌었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심사위원들에게 긍정적으로 전달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포닥 시절에 경험했던 다양한 활동들, 예를 들어 과학축제 자원봉사, 학생지도, 안전관리와 장비 관리, 연구실 운영 행정 참여 같은 일들 또한 학과가 교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조직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저는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활용해 의료용 마이크로·나노 센서와 로봇을 연구합니다. 초기에는 광섬유 기반 생체분자 및 박테리아 감지 같은 주제들을 다뤘고, 최근에는 플라즈모닉 효과를 이용한 박테리아 미세 조작 및 치료 응용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박사후연구원 시절, 저는 표면증강 라만 분광법(surface-enhanced Raman spectroscopy, SERS)을 이용한 박테리아 실시간 감지 센서를 개발하면서 신기한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센서 주변으로 박테리아들이 모여드는 것이었죠. 당시 연구 목표는 센서 개발이었기에 처음에는 단순한 ‘노이즈’라고 생각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 현상은 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팬데믹으로 연구실 접근이 막히자, 예전에 기록해둔 현미경 이미지 데이터를 다시 꺼내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문헌을 찾아보고 독학으로 비디오 데이터 분석 기법을 익히면서 락다운 기간에 논문을 작성했고, 이후 석사 학생과 함께 후속 연구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논문들은 화려한 저널에 실린 건 아니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꿔 제 스스로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기록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논문들을 계기로 미국 Albert Einstein 의대의 장내 박테리아와 질병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그룹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제서야 이 현상이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라, 질병 메커니즘 이해나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이 지금의 연구 방향을 잡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박테리아의 행동을 이해하고 제어함으로써 감염 제어, 미세침습치료, 나아가 새로운 면역치료 전략 개발에 기여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 International Women in Engineering Day를 기념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실험 중인 모습이 담긴 사진 Ⓒ Dave Guttridge, Imperial College London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지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연구를 하다 보면 누구나 좌절을 겪습니다. 기똥찬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것도 찾아보면 이미 누군가 해놓은 경우가 많지요.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금세 시니컬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호기심과 비판적 시각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연구가 재미있고, 건강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비로소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학원 생활, 더 나아가 연구란 것은 끝이 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균형을 지켜가는 태도가 결국 지치지 않고 오래 연구를 이어가는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균형을 유지하는 데 혼자만의 시간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산책을 하거나, 잡생각을 정리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환기하는 순간들이 저에게 연구와의 거리를 두게 해 주었고, 다시 호기심을 붙잡을 여유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물러나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기에 연구의 좌절이 곧 회의로 이어지지 않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각자 방식은 다르겠지만, 자신이 호기심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대학원 생활을 건강히 이어가려면 연구에서 오는 좌절과 스트레스를 버틸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그게 생활 속의 작은 습관들이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매년 10 km 달리기를 했고, 지금은 출퇴근길에 한시간 이상씩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자연스럽게 체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소소히 식물을 키우던 것이 어느새 저희 집 발코니와 거실의 작은 정글로 확장되었는데, 그런 사소한 즐거움이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 (왼쪽) 성대 연구실 책상 옆에 두었던 화분들. 교내 화원은 심심할 때마다 들르던 참새 방앗간같은 장소였다. (오른쪽) 현재 런던 집 한 켠의 '미니 정글' 또 하나 중요한 건, 연구와 전혀 상관없이 스위치를 완전히 끌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동아리(르풋)에서 만난 친구, 선, 후배님들과 10년 넘게 꾸준히 만나면서 연구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잡담과 웃음, 그리고 노래방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는데, 이런 관계들이야말로 긴 대학원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관리’하려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좋아서 했던 일들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체력 유지와 멘탈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무언가 거창한 관리법을 찾기보다는, 자신이 소소히 즐길 수 있는 활동과 편히 쉴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김장아 교수가 이끌고 있는 연구실 mini lab 학생들과 ------------------------------------------------------------------------------------------------------------------------------------------------------------------------------------------------ ■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전기전자공학과, 신소재공학과 채상훈 교수 - 2010년 반도체시스템공학과 졸업 - 2014년 에너지과학과 박사학위 취득 - 2016 ~ 2021년 컬럼비아 대학교 박사후연구원 - 2021년 난양공과대학교 조교수(Nanyang Assistant Professor)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NTU) 전기전자공학과와 신소재공학과에 공동 임용되어 조교수(Nanyang Assistant Professor)로 재직 중인 채상훈입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2010년에 학사(반도체시스템공학), 2014년에 박사 학위(에너지과학)를 취득한 후,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쳤습니다. 제 연구는 주로 광학 신재료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광전자 특성을 규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광전자 소자를 개발하며, 나아가 집적 광포토닉스(integrated photonics)와 결합해 새로운 정보처리 방식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학 상호연결(Optical interconnect), 광학 컴퓨팅(Optical computing), 인공지능 프로세서(AI processor), 양자 처리(Quantum processing)와 같은 차세대 정보처리 플랫폼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1기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학사 과정을 밟으며 반도체 공학, 전자공학, 시스템 분야의 기초를 충실히 다졌습니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삼성전자와 계약학과이기 때문에 산업에 쓰일 수 있는 공학 지식을 바로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모교에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박사 과정을 거치며 물리학, 응용물리, 재료공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기초과학적 시각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공학과 이학, 반도체와 비반도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공정과 측정, 전자와 광자 등을 모두 아우르는 넓은 연구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특히 성균관대는 연구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하고 새로운 학과를 신설, 다양한 전문 교수진을 구성하는 등 변화를 선도했기에 더욱 폭넓은 학습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부 시절 전공이었던 반도체시스템공학과도 제가 1기였고, 박사 과정을 밟은 에너지과학과 역시 신설된 학과였네요. 다양한 학문적 토대는 현재 제가 진행하는 융합 연구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고, 공학적 응용 능력과 기초과학적 탐구심이 결합해 지금의 집적 광포토닉스 연구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왼쪽) 성균관대 대학원 (오른쪽) 박사 졸업식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난양공과대학교에 임용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에서 학부 과정을 밟았습니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삼성전자와 성균관대가 함께 설립한 계약학과로,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서 활약할 인재를 양성하는 매우 특별하고 야심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3학년 무렵 반도체 설계나 시스템 구조보다는 반도체 소자, 공정 같은 하드웨어 분야에 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나아가 기초과학 연구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기초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물론 학부 4년 동안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을 최대한 충실히 이수했고, 이러한 경험은 훗날 대학원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이영희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으며 물리학 연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박사 과정 중에 이영희 교수님께서 IBS 단장으로 부임하시면서 연구실은 순식간에 대규모 연구센터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세계적인 연구 분위기와 수준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죠. 학위를 마친 뒤인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성균관대학교 나노구조연구센터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갔고, 대체복무가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해외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가장 강하게 끌렸던 곳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James Hone 교수님의 연구실이었습니다. Hone 교수님의 독창적이고 임팩트 있는 논문들에 깊이 매료되어, 미리 연락을 드리고 한국과 미국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끈기 있는 지원 끝에 다행스럽게도 컬럼비아대학 연구실에 합류할 수 있었고, 특히 성균관대학교의 해외 박사후연구원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첫 1년간은 체류비를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국제적인 연구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았습니다. 성균관대에서 습득한 모든 기술을 새로운 과학적 시도와 접목하며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던 즐거웠던 시기였고, 동시에 와이프와 함께 뉴욕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낸 특별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밤낮으로 함께 연구했던 동료 연구자들을 통해 싱가포르 대학들의 뛰어난 연구 환경에 대해 알게 됐고, 싱가포르 출신 동료의 적극적인 소개를 계기로 난양공과대학교(NTU)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2020년부터 교수 임용을 준비해 지원했고, 면접을 거쳐 싱가포르 난양공대 Nanyang Assistant Professor (NAP) 조교수직을 제안받았습니다. 단순한 일반 조교수 트랙이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 확신을 갖고 경쟁력 있는 연구자를 지원하는 NAP 트랙이라 특별했어요. NAP 교수에게는 임용과 동시에 약 150만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16억 원)의 초기 연구비, 박사과정생 장학금, 박사후연구원 고용 지원, 소속 학과의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지원은 독립적인 연구실을 설립하고 도전적인 연구를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었습니다. ▲ (왼쪽) NTU 세미나 (오른쪽) 양자 포토닉스 연구실(Quantum Photonics Lab) |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임용을 위해 특별히 초점을 맞춘 부분과 임용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난양공대는 연구중심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교수 임용 과정에서도 후보자의 연구 역량을 가장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따라서 저는 임용을 준비할 때 대담하면서도 야망 있는 연구 주제를 제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단순히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5년, 10년 뒤에 실현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용 면접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던 분이 노벨 화학상 심사위원이셨는데, 제가 제안한 도전적인 연구 계획을 두고 “교수직을 시작한 후에도 이 연구의 주제 범위를 줄이거나 목표를 낮추지 않고 끝까지 추진해서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저의 연구 제안이 단순히 임용 과정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교수를 하는 내내 높은 수준의 동기부여와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난양공대가 원하는 인재상이 세계적 연구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죠. 저의 미래지향적인 의지와 장기적인 전략을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성균관대 대학원 시절에 쓴 제 첫 논문은 늘어나고 투명한 트렌지스터에 관한 연구(Nature Materials 12(5), 403-409, 2013)로, 추억이 많이 깃들어 있습니다. 나노 신소재와 기존 세라믹 물질을 함께 구조적으로 변화시켜 20% 이상 늘어나면서도 투명성을 유지하는 전자 소자를 구현한 연구로, 당시 과분할 만큼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 박사후 과정부터는 제 연구의 주요 분야가 집적 광포토닉스(integrated photonics)와 2차원 물질(2D materials)의 융합으로 확장됐습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포토닉스 소자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 왔으며, 최근에는 매스컴에서 ‘광반도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는, (1) 2차원 물질을 집적 광포토닉스에 통합하여 광손실이 거의 없는 광학 변조기를 개발한 연구 (Nature Photonics 14(4), 256–262, 2020), (2) 쌍곡선 분산(hyperbolic dispersion)과 광전자 특성을 프로그램 가능하게 제어한 연구 (Science 371(6529), 617–620, 2021), (3) 나노재료의 내재적 및 외재적 무질서(disorder)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제시한 연구 (Nature Materials 18(6), 541, 2019)가 있습니다. 현재 난양공대에서도 재료와 광포토닉스를 통합하는 차세대 정보처리 플랫폼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광학 상호연결(Optical interconnect), 광학 컴퓨팅(Optical computing), 인공지능 프로세서(AI processor), 양자 처리(Quantum processing)와 같은 차세대 정보처리 장치 개발을 추진 중입니다. 앞으로도 이 분야의 연구 성과들이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출판될 예정입니다. 광포토닉스 분야는 이미 학계와 반도체 산업 전반에서 핵심적인 연구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저는 이 분야에서 산학 간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기업들과 더불어 싱가포르 교육부, 국방부에서도 제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의미 있는 성과들을 도출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부터는 난양공대의 전체 반도체 공정(클린룸) 시설을 총괄하는 Director라는 중책을 맡게 됐는데요.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반도체 연구와 교육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게 되어 큰 책임감과 동시에 벅찬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 컬럼비아대학교 박사후연구원 시절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지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현시점에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지식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연구는 특정 한 분야의 지식만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융합적 시각이 핵심이죠. 흔히 “연구자는 한 우물만 계속 파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가치가 있는 우물을 선택하고, 그 우물을 파는 데 다양한 도구와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즉, 자신이 속한 전공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되, 다른 학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접목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연구하는 집적 포토닉스를 잘하기 위해서는 물리, 화학, 광학, 재료, 반도체 공정, 반도체 소자, 전자공학, 컴퓨터공학까지 모두 이해해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이 분야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연구자가 많지 않은 이유 또한 바로 종합적인 전문성이 요구되는 데 있습니다.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는 동시에 융합 전문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대학원생 여러분들은 자신이 속한 한 분야에만 머무르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른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연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분야를 탐구한다면 그것이 자신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학부 시절에는 전기전자 및 공학에 집중했고, 석·박사 과정에서는 물리 원리에 기반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기초공학과 이학 분야를 폭넓게 수학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지금 제가 융합 연구를 추진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저는 난관 극복에 있어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연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무리해서라도 될 때까지 부딪쳐 보는 성격이었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난관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마주하는 용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생인 여러분들은 현재 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싶다면 문제를 직시하세요.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서 저는 운동도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했습니다. 학부 시절부터 대학원까지 검도, 축구, 헬스를 꾸준히 했는데요. 이를 통해 길러진 체력과 지구력은 긴 연구 여정을 버틸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개인 운동과 단체 운동을 모두 경험하면서 각각의 다이나믹을 연구생활에도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 이영희 교수님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교수님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도교수님이셨던 이영희 교수님과 매일 조금이라도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연구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교수님의 사고방식과 연구 철학을 이해하며 큰 방향에 공감하려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제 연구와 논문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교수님과 나누었던 대화들은 지금 제가 제자들과 소통하는 데에도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지금 오히려 그때보다 지도교수님을 한층 더 깊이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캠퍼스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도 꼭 누리시기 바랍니다. 저의 최애 장소는 학부 1학년 때부터 10년 동안 단골이었던 ‘먹거리 고을’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소소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쌓았던 공간인데,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모님께 제 이야기를 전하시면, 아마도 서비스로 고갈비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 No. 89
- 2025-10-20
- 5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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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엔지니어 Tux 박수진 동문(소프트웨어학과 14)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남기는 '활자'국
#Tux 성균관대학교 에브리타임 검색창에 위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서른 편이 넘는 글이 나온다. 2019년에 첫 글을 올린 이후 지금껏 후배들의 진로 선택에 밀도를 더해온 펭귄 프로필의 닉네임 Tux는 바로 소프트웨어학과 14학번 박수진 동문이다. 후배들이 따라 걸어올 수 있도록 발자국을 글로 새기며 일명 ‘활자’국을 남기고 있는 그녀는 진로 고민 속에서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는 성균관대의 고마운 펭귄이다. 2025년 6월 24일,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자유게시판에 ‘구글 합격 후기’라는 제목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학부연구생 Tip’, ‘미국 CS 대학원 박사과정 합격 후기’, ‘메타 출근 한 달차’ 등 대학원, 유학, 해외 취업과 관련된 궁금증을 친근하게 풀어주고, 유학 상담이나 서류 첨삭도 도와주며 후배들의 곁을 지켜온 Tux가 구글 입사 소식을 전한 것이다. 후배들의 무수한 축하와 감사 인사를 받으며, 이제는 구글 엔지니어로 활약할 그녀를 인터뷰했다. |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프트웨어학과 14학번 박수진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에브리타임에서는 닉네임 Tux로 활동했습니다. 2019년에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원에서 Computer Science 박사과정으로 공부하다가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졸업 후에는 올해부터 구글 Cloud Infrastructure 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로 제 얘기를 나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균관대 에브리타임에 작성한 구글 최종 합격 후기 글이 큰 반응을 불러왔어요.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리크루터로부터 합격 전화를 받던 순간의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모든 인터뷰가 1대 1로 진행되었다 보니, 사실 인터뷰 과정에서 인터뷰어의 반응이나 티키타카를 통해 제가 잘하고 있는지를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었어요. 다행히 대부분의 인터뷰가 긍정적으로 흘러갔던 편이라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무사히 오퍼로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인터뷰 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기쁨은 그다음이었고요. 그 후에는 이후 예정되어 있는 다른 회사들과의 인터뷰 일정이나, 연봉 협상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줄곧 학교에만 있었던 터라 연봉 협상을 해 볼 일이 없었고, 노련한 리크루터와 영어로 협상하려니 또 공부할 게 많더라고요. ▲ 성균관대 에브리타임 자과캠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구글 합격 후기’ | ‘Tux’라는 이름으로 작성한 글이 어느덧 30편을 넘겼어요. 후기 글을 꾸준히 쓰게 된 계기와, 글을 쓸 때 담으시는 마음이 궁금해요. 성균관대에 입학한 뒤, 학과의 지원으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새로운 세상을 접할 때마다, 또 졸업 후 멋진 커리어를 시작한 선배들을 볼 때마다 제 목표가 매번 업데이트되었거든요. 저도 그런 경험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만큼,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고등학생 때는 내신이나 모의고사 등급처럼 눈에 보이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그냥 주어진 기준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됐어요. 그런데 대학에 와보니 단순히 학점을 잘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성공이라는 게 어디쯤 있는 건지 종종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열심히 해 봤는데도 안 되는 거라면 할 수 없겠지만, 그런 길이 있다는 것조차 몰라서 노력도 못 해보고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 또한 저학년 때는 해외 유학은 저와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3학년이 되어서야 이런 진로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소프트웨어학과가 2011년에 생겼고, 제가 4기이다 보니 미국 박사과정을 준비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 정보도, 진학한 선배도 없어서, 내가 과연 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괜히 헛바람이 들어 불가능한 꿈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건지조차 명확하지 못해서 불안했습니다. 그럴 때, 한 명의 선배라도 선례를 만들어 주면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준비할 수 있어서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후배들에게 이런 방향의 진로도 있다는 것을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이런 길도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음 목표나 꿈을 그려 나가는 후배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글을 작성했습니다. | 2019년 2월에 ‘학부연구생 시작 Tip’이라는 글을 올려 처음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을 전했어요. 동문님의 학부 시절도 궁금합니다. 처음 학부연구생(대학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부연구생을 처음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오히려 취업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당시 소프트웨어학과에서는 3학년이 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학부연구생을 시작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저 역시 큰 고민 없이 다들 하니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3학년쯤 되면 슬슬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 진로를 정하라고들 했는데, 당시의 저는 정작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꽤 답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어요. 아직 딱히 제대로 해본 것도 없는데,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좋아하는 걸 찾는 건 어려웠지만, 잘하는 걸 좋아하게 되는 건 쉬웠어요. 학부연구생을 시작한 후 연구실에서 매주 세미나에 참여하고, 논문 스터디를 하고, 국내 학회 논문도 작성하는 과정에서 박사과정 선배들께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연구가 점점 재밌어지고 좋아졌어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밤늦게 연구실에 남아 공부하는 날이 많아졌고, 자연히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 학부 졸업 후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Tech) 대학원에 진학하셨어요. 결심 끝에 진학하신 CS 박사과정 중 “이 길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이 있었나요? 안 그래도 힘든 박사과정인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국에서 모든 걸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현실은 처음 예상하고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모질고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대학원 유학이 이렇게 다사다난한 여정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오히려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역경들을 하나씩 이겨내며 조금씩 성장할 때마다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하게는, 유학을 나오기 전보다 영어가 한층 편해졌고, Meta, Microsoft 같은 여러 빅테크 기업에서도 연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요.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 ▲ Meta, Microsoft 제 분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 좋았어요. 또 전 세계에서 모인 똑똑한 친구들이 가득한 환경에서, 서로 배우고 자극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네트워크 역시 유학을 통해 얻은 큰 자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모두가 낯선 타지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던 신입생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친구들이 전 세계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되거나 주요 테크 기업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 새삼 신기합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선택한 덕분에 더 많은 기회와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다사다난한 여정이라고 언급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 덕분에 제 20대가 다채로운 경험으로 가득 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틀랜타에서 시애틀까지 40시간이 넘는 거리를 무려 두 번이나 차로 직접 횡단하기도 했고, 열 곳이 넘는 미국 국립공원들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스위스에 있을 때는 여름이면 호수에서 수영하고, 겨울이면 알프스에서 눈썰매를 타고 산에 내려오며 주말을 보내기도 했고요. 학문적인 성장만큼이나, 삶 자체가 넓어지고 풍부해졌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여정이었습니다. | 세계 최고의 IT 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기술 혁신의 중심지, 미국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에서 메타(Meta) 방문 연구자로 일하셨어요. 많은 개발자가 한 번쯤 꿈꾸는 무대에서 실제로 살아 보고 일해 본 느낌이 궁금합니다. 저도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는 만큼, 실리콘밸리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습니다. 마침 Menlo Park에 있는 Meta 본사에서 7개월간 방문연구원(Visiting Researcher)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처음에는 졸업이 늦어질까 봐 조금 망설이기도 했어요. 그래도 ‘한 번쯤 꼭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하게 됐습니다. 메타에 다니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건 의외로 ‘괴리감’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있을 때보다 업무 강도도 더 낮고, 밤새우는 일도 없고, 일과 삶의 균형도 지켜가며 더 여유롭게 일했는데, 제가 작은 것 하나만 완성해 가도 팀원들은 아낌없이 칭찬해 줬고, 월급은 2~3배를 줬거든요. 현실에서는 늘 시간도, 돈도 부족한 대학원생이었던 제가 갑자기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아도 되나 싶은 어리둥절함이 메타에서의 첫인상이었습니다. 근무 기간 동안 인상 깊었던 건, 회사가 개발자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루 세 끼 식사는 물론이고, 커피, 아이스크림, 베이커리 같은 간식도 무제한으로 제공되었고요. 업무에 필요한 장비들은 오피스 곳곳에 놓여있는 자판기에서 사원증을 찍기만 하면 바로 뽑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비행기도 비즈니스석으로 끊어주고, 현지 정착을 도와주는 전담 매니저가 배정되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짐을 보내는 일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무 상담도 한국과 미국 각각 전문가를 붙여줬고요. 제가 일하던 2022년에는 출퇴근에 대한 제약도 전혀 없었고, 원한다면 100% 재택근무도 가능했습니다. 미팅 시간만 잘 지키면 언제, 어디서 일하든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개발자들이 업무 외적인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회사가 환경과 시스템을 최대한 지원해 주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크게 느낀 건,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만 출근한다더라,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한다더라 하는 얘기들을 들으며 많은 분이 부러워하지만, 제가 체감한 절대적인 업무량은 오히려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았습니다. 다만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성실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없을 뿐이죠. 한국에서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메타에서 재택근무를 할 때는 하루 종일 정말 열심히 일했더라도 그날따라 코드가 풀리지 않고 진전이 없으면 하루 종일 논 것과 다름없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체감했던 시기였습니다. | 첫 논문이 컴퓨터시스템 분야 최상위 학회인 OSDI(Operating Systems Design and Implementation)에 채택되었어요. 처음으로 작성한 논문이라 더욱 의미가 크실 텐데, 자세한 이야기와 함께 성과를 자랑해 주세요. 박사과정 3년 차에 작성한 논문으로, 고성능 컴퓨터에서 CPU 코어를 추가하면 성능이 더는 올라가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시스템 분야에서는 흔히 관측되는 현상인데요, 저는 이를 운영체제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기법을 제안하고 구현해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시스템 분야는 다른 컴퓨터공학 분야에 비해 논문이 나오는 주기가 다소 긴 편이라, 첫 결과를 만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한 애착도 깊었습니다. 특히 이 논문은 제게 있어 단순한 연구 성과 그 이상이기도 합니다. 박사과정 1년 차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고, 저를 포함한 많은 유학생이 2년 넘는 시간 동안 재택근무와 고립된 환경 속에서 연구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현실감 없는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고, 사재기로 텅 빈 마트 진열장을 마주하던 날들, 타국에서 가족도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긴 시간을 버텨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시기를 유학생끼리 ‘잃어버린 2년’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버거운 시기였지만, 그 와중에 묵묵히 이어간 연구가 결국 논문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대학원을 입학하는 순간부터 저를 줄곧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제 무능함에 대한 불안을 이때부터 떨쳐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연구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끌어서 한때는 ‘애증의 주제’가 되어버렸는데, 막상 OSDI에 채택되고 나니 다시 애정만 남더라고요. 처음으로 국제 학회 무대 위,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했고, 거기에 실시간 데모 시연까지 준비했기 때문에 부담도 컸습니다. "라이브 데모를 한다"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학회장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Oh… Good Luck!”을 외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다행히 발표는 무사히 마쳤고, 논문에서만 보던 유명한 연구자들과 직접 제 연구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주고받는 경험은 기대 이상으로 훨씬 짜릿했습니다. 3년간 크고 작은 슬럼프를 겪고, 외롭고 답답하게 보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한순간에 롤러코스터처럼 치솟는 기분이었어요. ‘다들 이 맛에 연구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자랑하자면, 지난달에 열린 OSDI 2025에서도 1 저자로 또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돌아왔습니다. ▲ OSDI 2022 ▲ OSDI 2025 | 긴 고민 끝에 학계가 아닌 인더스트리를 선택하셨어요. 구글 합격 수기에서 결정 이유를 자세히 다루기엔 내용이 방대하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여기에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진로를 결정할 때 늘 제 앞을 몇 년 먼저 걸어간 선배들을 많이 관찰해 왔어요. 특히, 똑똑하고 멋지다고 느낀 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유심히 보고 따라가려 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논문 실적도 많고 연구 성과가 좋은 선배들이 대부분 교수가 되는 걸 보면서 ‘교수가 좋은 길인가 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하게 됐죠. 하지만 그게 왜 좋은 건지에 대해서는 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고, 마치 정답만 아는 채 풀이 과정은 모르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선배들에게 ‘왜 교수가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물어보기도 했고, 박사과정 5년 내내 그 이유를 납득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끝내 저 자신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어요. 혹시 내가 인더스트리에 막연한 로망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해 보려고 했습니다. 한국 인더스트리, 미국 인더스트리, 유럽 학계, 미국 학계까지 정말 다양한 환경에서 인턴십을 해봤는데, 이렇게 ‘종류별로’ 다 겪어본 박사과정 학생은 흔치 않을 거예요. 그런데 경험해 보니 의외로, 인더스트리가 제게 훨씬 더 잘 맞더라고요. 예를 들어, 몇 년을 바쳐 작성한 논문이 최상위 콘퍼런스에 채택되더라도 실제로 세상에서 사용되지 않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봤어요. 제 학회 발표 영상도 조회수가 1,000회도 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제가 단 몇 달 동안 기여한 코드가 실제 대규모 서버에 배포되고, 수많은 사용자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경험이 정말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시스템 성능과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인더스트리에서 접할 수 있는 압도적인 자원과 스케일, 그리고 실질적인 임팩트가 특히 더 크게 느껴졌어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회사에서는 박사들이나 경력 많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교수가 되면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 연구해야 하잖아요. 지금은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 좀 더 기대되기도 하고, 그 환경 자체가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물론 이 선택이 100% 옳았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고, 사실 지금도 고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몇 년 뒤에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대한 것과 달리 실망하고 후회할 수도 있겠죠. 다만, 지난 몇 년간 정말 밀도 있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지금은 제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마주해 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 구글에 붙기까지 스크리닝, 온사이트 인터뷰부터 팀 매칭 인터뷰까지 거의 10차례에 달하는 과정을 거치셨어요. 긴 여정을 견디신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박사까지 마치면 더는 코딩 테스트를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구글 인터뷰에서도 여전히 그래프 탐색, 트리 순회 같은 알고리즘 문제를 풀어야 했고, 학부 저학년 때 배웠던 개념들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복습하고 연습해야 했습니다. ‘내가 이걸 또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솔직히 처음에는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인터뷰 준비에 생각보다 충분한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논문에는 1년 이상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졸업 후의 진로를 결정짓는 취업 인터뷰에는 일주일도 채 못 쓰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아쉬울 것 같았어요. 떨어지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인터뷰 준비에도 최선을 다해서 제 실력을 온전히 보여주고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논문 제출, 졸업 준비만큼이나 취업 준비에도 시간을 의식적으로 배분하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박사과정 중에 인터뷰 준비에만 집중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몇 달에 걸쳐 메인 업무 외에 주말이나 밤 시간을 투자하면서 꾸준히 준비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크리닝부터 온사이트, 팀 매칭까지 반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인터뷰 프로세스를 거치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는 않았지만, 준비한 만큼 제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던 점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 대학원 합격 후기를 쓴 이후 6년간 100명이 넘는 성대 후배들에게 상담, 첨삭 등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기억에 남는 후배 등 소중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대학원 합격 후기를 쓴 게 2019년인데, 그 글을 읽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을 주시는 후배님들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신기해요. 시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달에 3~5명 정도는 꾸준히 연락을 주셔서, 지금까지 대화한 분들이 사실 100명도 훌쩍 넘을 거예요. 장문으로 한두 번의 대화가 Q&A처럼 오가는 경우도 있고, 1~2년에 걸쳐 유학 준비 전반을 도와드리며 오랫동안 연락을 이어간 경우도 있어요. 그중에는 처음엔 후배로 상담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한국에 갈 때마다 꼭 만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각 주마다 제 멘티들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도 새삼 재미있게 느껴지곤 해요.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인데, 유학 가기엔 늦었을까요?’인데, 정말 해외로 나오실 생각이라면 사실 나이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서로서로 나이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각자의 배경이 다 천차만별이라 나이로는 경쟁이나 비교가 잘 안되거든요. 기억에 남는 후배는 정말 많은데, 한 분만 고르자니 어렵고, 모두 다 언급하기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몇 년 전의 제 모습이 떠오르는 분들과의 상담이 특히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꿈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한 마음에, 답장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면서도 조심스럽게 장문의 쪽지를 보내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저도 너무 잘 알거든요. 그래서 그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더더욱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고 싶고, 같이 고민하고 길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유학 상담은 사실 업체를 통해 받으면 꽤 큰 비용이 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대신 상담비로 에브리타임에 본인의 합격 후기를 남겨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일종의 다단계랄까요. 6년 전에 쓴 제 후기보다, 이제 막 따끈따끈하게 합격하신 분들의 후기가 훨씬 더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사실, 학계 대신 인더스트리를 선택하면서 마지막까지 가장 아쉬웠던 부분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성장을 함께 보고, 응원하고, 필요한 조언을 나누는 일 자체가 참 좋더라고요. 비록 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멘토링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 스브스뉴스 출연* 이후 공적인 매체에서 다시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시죠. 동문님을 롤모델로 삼아 해외로 나아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박수진 학우는 2021년, 정교한 필기체를 가진 성균관대학교 인간프린터로 스브스뉴스에 출연했다. ▲ 스브스뉴스 출연 영상(이미지 클릭) 스브스뉴스에는 연구나 진로와는 전혀 무관한 주제로 출연해서 사실 조금 민망했는데, 이렇게 다시 조금은 더 진지한 이야기로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2019년에 유학을 온 이후, 타지에서 적적할 때마다 에브리타임에 사는 얘기를 공유해 드렸는데, 이렇게 학교 웹진에도 소개되다니 성공적으로 대학원을 잘 마무리하는 것 같아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해외 진학이나 취업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분명 쉽지 않은 순간들도 마주하시겠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경험과 깊은 성장을 얻게 되는 여정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도 대학원… 꼭 오세요!
- No. 88
- 2025-09-17
- 1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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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HM 대표이사 박상오 동문(경영학과 82)
긴 호흡으로 차근히 정립해 나가는 근본
“호텔과 리조트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시대” 호텔신라의 비즈니스호텔 브랜드 신라스테이(Shilla Stay)와 어퍼 업스케일급 브랜드 신라모노그램(Shilla Monogram)을 운영하며, 한국 호텔업계와 긴 걸음을 함께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신라HM의 초대 대표이사 박상오 동문(경영학과 82)이다. 호텔신라가 2014년 신라스테이 본부를 자회사 신라스테이(현 신라HM)로 분사하면서 초대 대표에 선임된 박 대표는 이후 10년째 신라HM의 수장을 맡고 있다. 신라HM은 브랜드 파워와 호텔신라 그룹의 견고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창궐한 2020년에도 큰 타격 없이 위기를 극복했다. 이어 1년 만인 2021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2022년에는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하며 호텔신라 그룹의 핵심 사업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 해 동안 100만 개 이상의 객실을 판매하며 호텔업계의 미답지를 개척하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호텔운영전문회사’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현재도 도전의 포석을 다져가며 호텔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자랑스러운 성균인이자 경영인 박상오 동문을 만나 그가 선사하는 경영의 정수를 들어 보자.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1989년 졸업 후, 삼성그룹(호텔신라)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입사 이후 줄곧 경영관리부서에서 근무하다가 2009년 임원으로 승진했으며, 2013년에 호텔신라가 사업 확장을 위해 새롭게 출시한 브랜드 신라스테이(Shilla Stay)를 운영하기 위해 설립된 신라HM(Hospitality Management)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현재까지 재직 중입니다. 현재 신라HM은 신라스테이뿐 아니라 상위 브랜드인 신라모노그램(Shilla Monogram) 또한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신라스테이 삼성 ▲신라모노그램 강릉 | 신라스테이(현 신라HM)의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래 10년간 브랜드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호텔업계에서 오랜 기간 최고경영자로서 계신 가운데, 대표이사로서의 첫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삼성그룹(호텔신라)에 입사하여 임원이 되기까지의 20여 년은, ‘호텔의 성장은 철저하게 룸 KEY(객실 수 혹은 프라퍼티 수)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굳혀 가는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서울과 제주 두 곳의 호텔만을 운영 중이었던 상황에서는 기업으로서의 성장은 물론, 직원들 개개인의 꿈을 펼치는 데에도 너무나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호텔업이라는 것이 초기에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고 그 회임 기간도 길어, 직접 투자를 통한 신규 진출에는 큰 위험이 따르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원으로 승진한 후 2011년쯤, 금융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엔고 현상으로 일본 관광객의 입국이 증가하는 등 호텔의 사업 여건이 급격히 개선되는 상황이 전개되어, 이는 외부 자본을 활용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신규 브랜드 진출에 대한 치열한 내부 토의를 거친 후, 2012년에 4성급 비즈니스호텔 신라스테이를 선보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2013년에 신규 브랜드 진출을 지지한 임원 중 한 사람으로서 제가 신라스테이 본부를 맡아 신규 프라퍼티의 입지 선정, 설계, 시공, 오픈 준비, 운영 등의 전반적인 업무를 도맡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 들어서는 신라스테이를 운영하는 회사를 별도로 만드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호텔신라의 자회사로 별도 법인을 설립하였고, 제가 초대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신라스테이의 상위 브랜드인 신라모노그램을 론칭하고 이를 함께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16개의 신라스테이 브랜드와 1개의 신라모노그램 등 총 17개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해 평균 1.4개 수준의 신규 프라퍼티를 오픈해 왔고, 12년이 지난 현재는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내실을 다짐으로써, 적어도 국내에서는 호텔 운영사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고 자부합니다. | ‘신라스테이’는 다른 비즈니스호텔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호텔 운영의 3대 요소를 브랜드력, 탑라인(Top Line)* 확보력, 원가경쟁력이라고 봅니다. 브랜드력은 모회사인 호텔신라의 후광을 입은 측면이 매우 크고, 이를 바탕으로 원가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타 경쟁사와의 큰 차별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원가경쟁력은 결국 프로세스 경쟁력에서 비롯됩니다. 경쟁력이란 프로세스의 혁신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업무 체계의 정립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탑라인(Top Line): 기업의 손익계산서에서 가장 위에 나오는 숫자. 즉 총매출(Gross Sales)을 뜻한다. | ‘신라스테이’가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주관한 ‘2024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 비즈니스호텔 부문에서 5년 연속 1위를 수상했다고 들었습니다. 꾸준한 성과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호텔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 업의 지속 가능성은 브랜드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호텔의 경쟁 요소 중 브랜드력과 탑라인 확보력, 원가경쟁력은 상호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시너지의 영역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탄탄한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탑라인을 개선하고, 극대화된 탑라인과 원가경쟁력은 곧 브랜드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이루게 됩니다. 특히 재무나 환경 측면으로 어려울 때도 이 부분에 대한 투자는 지속해 온 결과를 고객님들께서 높이 평가해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대표님만의 경영 철학이 궁금합니다. 우연이나 환경에서 얻은 좋은 성과보다는 체계적인 프로세스 하에서의 실패가 더욱 의미 있다는 것입니다. 우호적인 환경요인에서 기인한 성과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나 기계화할 수 없는 호텔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체계화된 프로세스의 중요성은 더 크다고 봅니다. 긴 호흡으로 차근히 근본을 정립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성과를 볼 수 없을지는 모르나, 종국에는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대표이사라는 자리를 오랜 시간 지켜오신 입장에서, 그 자리에 필요한 자질과 감당해야 할 무게는 어떤 것이었나요? 어떤 조직의 장에 있어서 핵심 경쟁력은 그 업의 본질과 관련된 전문성과 실행력, 그리고 조직을 회사의 전략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통솔력이 좌우합니다. 업의 본질에 대한 부단한 연구를 해 나가는 동시에 이를 실무에서 적용하고 잇따른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를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피드백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그 리더십은 누구보다 우위에 있는 지식으로 ‘나를 따르라’ 하는 영역이 있고, 한편으로는 큰 방향의 한 틀 속에 있다면 ‘뜻대로 다하라’ 하는 분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영역은 적절한 조화의 문제를 넘어, 철저하게 계산된 가운데 실행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 성균관대학교 재학 시절, 경영학도 박상오 학우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1학년 때는 경영 계열로 입학하였으며, 2학년이 되어서 경영학과와 회계학과로 나뉘었는데 돌아보면 1학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원 없이 놀아 본 것도 아니고,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시기였습니다. 1년 내내 무의미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래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동생이 또 대학에 들어오게 되어서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제대 후 복학하니 친구들은 대부분 군에 있어서 85학번 후배들과 대학 생활의 나머지 3년을 함께했습니다. 졸업 연도가 되어 그동안 준비했던 다른 진로에 실패하면서, 기업을 간다면 다양한 길이 열려 있는 대기업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대학 생활은 입학부터 생각했던 진로까지 결국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당시에 대학생이면 누구나 다 하는 담배, 당구, 커피, 포커조차 배워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실패로 점철된 학창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은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또래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이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 않고 4남 3녀의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서 나서, 위의 형님 두 분은 대학에 보내지 않으셨음에도 저를 대학에 보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원 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니 이 부분이 경영학과를 선택한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영학이라는 게 그렇듯이 (최고)경영자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요. 그러나 저의 노력과 꿈보다는, 부모님과 저를 위해 희생하신 형제자매, 지금의 가족,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여러 인연의 도움이 현재의 저를 있게 한 근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앞으로 대표님과 신라HM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앞서 말씀드렸듯, 신라HM은 호텔신라의 브랜드 중 신라모노그램(5성급), 신라스테이(3, 4성급)를 운영하고 있고, 향후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게 되면 이 또한 신라HM에서 운영하게 될 것입니다. 즉, 신라HM은 호텔의 소유가 아닌 운영전문회사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현재 국내에 신라스테이 브랜드 16개와 해외(베트남 다낭)에 신라모노그램 브랜드 1개를 포함한 총 17개가 운영 중이며, 올해 중으로 신라모노그램이 강릉과 중국 시안 두 곳에 더 오픈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다수의 신라스테이, 신라모노그램 브랜드의 호텔이 국내외에서 계약을 추진 중입니다. 늘 제게는 ‘다른 산업에서는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선두를 점하곤 하는데, 호텔산업은 왜 그렇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신라HM의 목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호텔운영전문회사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는 먼 훗날의 구호만 있는 희망 사항이 아니라 현재 실질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저는 초대 대표이사로서 그 초석을 깔아가고 있을 뿐, 그 확산과 완성은 우리 후배들의 몫이 되겠지요. | 최고경영자로서, 경영학도 후배들에게 따뜻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기업에 있어서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 중의 하나인 시대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기업이든, 어떤 영역이든 하나의 요소로 성공을 결정할 수만은 없습니다.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과 혁신적인 사고, 통찰력을 손에 쥐고 여러 구성 요소를 분석해야 합니다. 계획을 수립하고, 그 실행을 관리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선하고, 또한 그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의 역량을 그것에 맞게 일직선상에 놓는 일련의 과정이 기업 경영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기업에서의 필요 역량을 배양하는 역할로서는 경영학이 최적화된 학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다닐 때보다 훨씬 훌륭한 후배들이 많이 와 주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가 힘이 납니다.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늘 긴장을 주는 후배들이 고맙고 장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No. 87
- 2025-08-26
- 6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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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이정규
썸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인간관계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을 것이다. 특히 연애로 발전하기 전 단계인 썸은 우리를 설레게 하는 동시에 헷갈리고, 골치 아프게 만든다. 어쩌면 모호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떨리는 상태가 썸의 가장 큰 매력이자 맹점일지 모른다. 우리 대학의 이정규 교수는 이러한 썸의 모호함을 철학적으로 정의 내린다. 순식간에 지나온 2025년의 상반기와 지나온 인연들을 회상하며 썸이라는 철학을 함께 알아보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철학과의 이정규입니다. 저는 언어철학과 존재론/형이상학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고, 특히 우리 언어가 세계의 다양한 대상들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종류의 대상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분석철학사, 존재론/형이상학, 양상 논리학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썸에 관해 쓰신 논문이 유명한데, 신조어 '썸'으로 논문을 작성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저의 주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음에도 썸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된 계기는 박사과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 썸이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하고 있었는데, 친구와 이 용어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중 문득 이 개념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떠올린 분석을 가볍게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그 글을 본 한 선배님이 "소셜미디어에서 재능 낭비하지 말고, 발전시켜서 투고해 보라"는 요지의 댓글을 남기셨어요. 박사과정 동안은 연구에 바빠 그 글을 잊고 지내다가, 몇 년이 지나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그 아이디어를 다듬어 논문으로 발전시켜 투고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국내 분석철학 분야에서 가장 손꼽히는 학술지인 『철학적 분석』에 해당 논문(「썸을 탄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조어 '썸타다'의 적용조건 분석 」)이 게재되었습니다. | 논문을 바탕으로 썸의 조건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철학에서 자주 쓰이는 한 가지 방법론이 개념 분석입니다. 개념 분석의 목표는 문제시되는 개념을 분석하여 그에 대한 선험적이고 필연적인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의 목표는 <썸>의 개념 분석을 통해서 두 사람이 썸을 타는 상황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분석이 올바르다면, 두 사람은 그 조건을 만족하는 오직 그 경우에만 썸을 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조건이 상대방의 호감에 대한 인식적 불확실성에 근거한다고 제안합니다. 논문에서 나타나는 완결된 분석은 다소 복잡하기에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드리지만, 그 핵심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고, 서로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증거가 호감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명확한 증거가 아닌 오직 그 경우 두 사람은 썸을 탄다. 더하여 호감을 보장해 주는 명확한 증거가 아닌 이러한 불확실성이 상대방이 호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적 불확실성을 기반한다는 전제하에 위 조건을 충족하는 불확실성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썸으로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 썸의 분석에 대한 반례 찾기를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과제가 있으실까요? 2018~2019년 <논리학> 강의에서, 필요충분조건과 반례 개념을 설명하며, 학생들에게 반례 찾기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반례는 제 분석이 어장 관리를 썸에서 제외하지 못한다는, 즉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반례입니다. 이러한 반례에 대해 논문에서 ‘썸이 아닌 어장 관리’와 ‘썸으로 볼 수 있는 어장 관리’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반박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논문에 등장하는 주요 비판점들 가운데 상당수는 각주에 이름이 언급된 당시 수강 학생들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교수님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을 타 본 경험이 있으실까요? 만약 썸과 관련한 제 개념 분석이 맞는다면, 인식적 불확실성이 결여된 썸이라는 것은 개념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즉, 모든 썸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이 됩니다. 저는 썸을 타본 경험이 있으므로, 이로부터 제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을 타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따라 나옵니다. 물론 인식적 불확실성이 결여된 썸이 가능하다는 올바른 반례가 제시된다면, 제 분석은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최성호 교수님의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오희철 교수님의 「'썸타다'에 대한 새로운 개념 분석: 믿음적 불확실성 관점」과 같은 논문을 읽어보시면, 그러한 시도를 찾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교수님의 주전공에 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관심을 갖고 계신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요? 단어나 문장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일견 그것이 지시하거나 나타내는 대상 혹은 사태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스파이더맨은 영웅이다'와 같은 문장이 스파이더맨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에 저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스파이더맨'과 같은 허구적 이름이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지, 또한 허구적 대상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이는 현재 분석 철학계에서 매우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로, 저는 관련된 연구 결과물들을 꾸준히 해외 유수의 학술지에 게재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으며, 그중 하나는 한국 분석 철학계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모하분석철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대한민국'과 같은 국가의 이름을 통해 우리가 정확히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보다 일반적인 철학적 주제로서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물질적 구성의 문제나 철학적 방법론이 과학적 방법론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분석철학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치밀한 논리를 통해 분석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재학생 여러분들이 관련 수업을 들어 보신다면 논리적 사고력을 한층 더 키우실 수 있고, 이는 철학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량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또한 근 몇 년 동안에는 철학과 관련된 주제들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트롤리 문제(윤리학), 통속의 뇌(인식론), 테세우스의 배(형이상학) 등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본 주제가 되었습니다. 5억 년을 무의 세계에서 사는 대신 천만 원 받기와 그냥 살기 중 선택하는 문제 역시 한때 밸런스 게임처럼 유행했었는데, 이 또한 철학에서 다루는 인격 동일성 논의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입니다. 철학은 이처럼 대중의 흥미를 끄는 주제들도 진지하고 심도 있게 다룹니다. 물론 대부분, 철학이 관련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합의된 정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을 배우면 왜 그러한 철학적 문제들에 답을 제시하기가 논리적으로 간단한 일이 아닌지, 각 입장에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지, 또한 철학적 주제들에 대해 본인이 지금까지 간과했거나 무지했던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모두 철학의 매력에 빠지셔서 깊은 논의를 나눠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은 하나의 합의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삶과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철학의 특징일 것이다.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의 방식으로 모호함을 탐색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썸과 같이 정답 없는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모호한 삶의 궤도를 걸어갈 때 자신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감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 No. 86
- 2025-08-08
- 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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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학과 남수정 교수, 동아시아학술원 손성준 교수, 유학·동양학과 안승우 교수
교육과 연구의 선순환을 이루다
■ 사회과학대학 소비자학과 남수정 교수 - 1992년 생활과학대학 입학 - 2002년 박사학위 취득 - 2022년 소비자학과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 남수정입니다. 1992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 1996년 2월 학부를 졸업한 뒤, 약 10개월간 투자은행에서 실무를 경험하고 1996년 동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2002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타 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갔고, 2007년부터는 전북 지역의 한 대학에서 15년간 교육과 연구를 병행했습니다. 2022년 9월,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에 부임해 현재까지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소비, 소비자 역량, 기후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주제를 중심으로 학제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 (왼쪽) 1993년 관악부 연주회 새내기맞이 신춘 음악회 기념, (오른쪽) 1998년 대학원 MT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성균관대학교에서의 학문적 경험은 제가 소비자학을 전공하고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소비자학의 다학제적 특성을 반영한 커리큘럼을 통해 양적·질적 연구방법, 소비자정책, 지속가능한 소비 등 다양한 주제를 학습하며 실증적 탐구 역량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연구 주제 설정, 설계, 분석, 논문화까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면서 연구의 기초를 다졌고, 동료들과의 공동연구와 토론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접하며 학문적 사고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2022년 9월,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에 부임하면서 모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생 시절 공부했던 익숙한 공간에서 후배들과 함께 연구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긴 주인의식은 연구에 대한 몰입도와 책임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고, 실제 연구 성과와 교육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연구 방법을 공유하며 후배 연구자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돕고 있습니다. 이 경험은 제 연구 역량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으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1996년 2월 성균관대학교에서 학부를 졸업한 후,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약 10개월간 근무하며 금융 실무를 경험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소비자 행동과 시장 구조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지만, 학부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소비자학의 전문성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이 따랐습니다. 결국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대학원 진학을 결심해 성균관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소비자학 이론과 함께 통계 분석, 조사 설계 등 다양한 연구 방법을 익히며 연구 역량을 키워 나갔습니다. 교수님들의 지도와 동료들과의 학문적 교류 속에서 점차 연구자로서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2002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인하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소비자 행동과 정책 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질적인 경험과 성과를 쌓았습니다. 2007년에는 전북 지역의 한 대학교에 전임교원으로 임용되어 15년간 교육과 연구를 병행했습니다. 현장에서는 단순한 이론 전달을 넘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역시 교육자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9월,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에 교수로 부임하게 되면서 다시 모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이 자리가 제게는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기회입니다. 동시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며, 앞으로도 학과와 학교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성실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소비자 역량(empowerment)을 중심으로, 기후불평등(climate inequality)과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실현을 주요 연구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지속가능한 소비(sustainable consumption)와 소비자 불평등 이슈를 사회 구조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미래기술과 기후위기가 소비자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실천 가능한 정책적·실천적 개입 방안을 도출하고자 합니다. 최근 출판한 논문인 “Reducing Food Waste Behavior for Sustainable Consumption: The Effect of Food Consumption Values on Food Waste” (Journal of Consumer Affairs, 2025)은 한국 소비자의 음식물 쓰레기 감축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식품 소비가치를 중심으로 진행된 연구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의 소비자 행동을 유럽, 미국 등의 사례와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특성과 우수성을 조명했으며, 음식물 쓰레기 감축이라는 실천적 주제를 소비자 개인의 가치와 연결해 설명했습니다. 특히 개인차에 따른 행동 변화의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따른 차별화된 개입 가능성을 탐색한 것이 주요한 의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학부생들과 함께 진행한 URP (Undergraduate Research Program)를 통해 기후 리터러시(Climate Literacy) 척도를 개발하고, 기후동행카드와 같은 정책 도구에 대한 소비자 수용 가능성을 분석하는 연구도 수행했습니다. 이는 소비자의 기후 정보 해석 능력과 실천력 간의 연결 고리를 실증적으로 탐색한 연구로, 향후 실천 기반 정책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후위기는 단지 자연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를 초래한 집단과 그 피해를 받는 집단 간의 책임과 피해의 불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정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기후위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이며, 이로 인해 기후위기는 곧 소비자문제라는 인식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향후 연구에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소비자 차원의 대응전략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기후소비자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 개발, 리빙랩(Living Lab) 기반의 지역사회 참여형 연구, 기후정보 및 실천 행동에 대한 디지털 기반 커뮤니케이션 전략, 그리고 국제 공동연구를 통한 소비자 불평등 완화 방안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사회 전반의 기후 대응력과 회복력을 높이고, 보다 포용적인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대학원생들이 교육을 통해 쌓은 지식을 연구로 전환해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은 주도성 있는 태도와 책임감 있는 소통 역량입니다. 연구는 단순히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연구의 주체는 학생 자신이어야 하며, 모든 연구 과정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수동적으로 지시만 기다리거나, 실험과 분석을 단순 업무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는 지식의 축적을 방해할 뿐 아니라, 창의적인 연구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공동연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현재의 연구 환경에서, 책임감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연구자로서의 기본 소양입니다. 일정이나 의견 조율 과정에서 응답이 지연되거나 소통이 단절되면 연구 전체의 흐름이 끊기고, 공동연구자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신중함 때문일 수도, 정보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간단히라도 정확하게 공유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00시까지 검토 후 답변 드리겠습니다” 같은 간단한 메시지라도 공동연구 파트너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동입니다. 결국, 연구자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식 그 자체보다도 태도와 자세, 그리고 연구 공동체 내에서의 기본적 윤리와 소양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학원 시기는 단순한 ‘학습자’의 위치를 넘어서 ‘연구자’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과 책임 있게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 그 시작점입니다. 이러한 역량은 단기간에 형성되기 어렵지만, 지도교수나 공동연구자와의 소통 경험, 팀 프로젝트, 학회 발표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길러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과정 자체가 바로 교육적 지식이 살아 있는 연구로 전환되는 실제적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025년 소비자학과 Pre-school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연구자의 삶은 대부분 책상 앞에서 오랜 시간 집중하는 일로 채워집니다. 저 역시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이어오면서,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해왔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2002년 8월 26일이라는 날이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박사학위를 받은 날이자, 제 딸이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박사논문을 쓰는 동안 임신과 출산을 함께 겪으며, 연구를 이어간다는 것이 단지 지식이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과 생활의 균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임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원생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은, 연구만큼 건강도 중요하게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좋은 연구를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력과 정신적인 여유가 함께 필요합니다. 저도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한 첫 학기에는 동료 교수님들과 함께 필라테스 강사를 초청해 정기적으로 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구에 집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자신에게 맞는 운동 루틴을 만들어 꾸준히 실천하는 것, 그것이 연구자로서 긴 여정을 건강하게 이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으니까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는 것, 그것도 연구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 동아시아학술원 손성준 교수 - 1997년 어문학부 입학(영어영문학 전공) - 2012년 박사학위 취득 - 2023년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성준입니다. 저는 2023년 8월 25일에 본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학부에서는 영문학과 중문학을 함께 전공했고 대학원 동아시아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연구 분야는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비교문학입니다. 강의는 주로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주관하는 한국학연계전공(학부), 동아시아학과(대학원)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학부시절 1전공은 영어영문학이었습니다. 즉, 앞에서 언급한 지금의 제 연구 분야와는 거리가 먼 셈입니다. 학업의 방향을 재정립한 계기는 본교 대학원 동아시아학과 진학이었습니다. 애초에 중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중문학을 복수전공 했고, 3학년을 마친 후에는 1년간 베이징사범대학교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에도 참가한 바 있습니다. 대학원을 동아시아학과로 지원한 것 역시 그 연장선입니다. 대학원생이 된 이후로는 은사이신 한기형 교수님의 영향을 받아 한국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비교문학 공부에 뜻을 두게 됐습니다. 관심 분야가 중국학에서 한국학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죠. 특히 비교문학이라는 영역은 제가 학부에서 전공했던 영문학과 중문학 모두 자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에 설립된 동아시아학과는 새로운 학문을 위한 후속세대 양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석박사 과정 동안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았고, 중국‧일본‧불가리아 등에서 개최된 국제학술회의에서 꾸준히 발표 기회를 얻었습니다. 2008년에는 베이징대학교 역사학과의 중국전문가 과정, 2011년에는 일본 니혼대학교에서 BK21 장기연수 프로그램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학원 시절 동아시아학술원의 다양한 연구 사업에 보조원으로 참여하며 학계 최고의 연구자들과 많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부분이 성장에 큰 원동력이 됐고, 지금도 변함없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왼쪽) 학부시절 중국 연수, (오른쪽) 석사시절 지도교수님과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으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2012년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첫 경력을 시작한 곳은 칭다오에 있는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였습니다. 귀국 후에는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의 연구교수로 일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강의 경력은 성균관대학교,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등 세 군데서 쌓아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2022년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공채에 합격해 처음으로 전임교원이 됐습니다. 해양대에서 1년 반 재직 후 상시채용 제도를 통해 모교에 임용되었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연구 중인 주제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드리면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 과정, 일본어와 중국어를 거치며 굴절되어 들어온 한국 최초의 서구영웅전들, 근대 문인들이 수행했던 번역과 창작의 상관관계, 식민지 검열체제와 문인들의 대응 양상 등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근대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번역'의 문제를 고찰해왔습니다. 대표 연구 성과는 『근대문학의 역학들 –번역 주체 ‧ 동아시아 ‧ 식민지 제도』(소명출판, 2019), 『중역(重譯)한 영웅 –근대전환기 한국의 서구영웅전 수용』(소명출판, 2023) 등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낸 연구서 중에는 최근에 책임 편집을 맡아 출간한 『한국근현대번역문학사론 –세계문학 ‧ 동아시아 ‧ 중역』(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5)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번역과 한국 근현대문학의 관계’에 대한 거의 모든 테마를 망라한 역작으로, 이 분야 전문가 20명이 힘을 합쳤기에 가능한 기획이었습니다. 향후 중점적으로 연구할 주제는 ‘동아시아 번역장’의 시좌(視座)로 ‘대한제국기 잡지의 애국 담론’을 재해석하는 데 있습니다. 이 계획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는 장기 프로젝트이기도 한데요. 총 10년의 연구기간 중 현재 3년 차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내부의 장벽인 내셔널리즘을 해체할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을 제공하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차이를 만드는 역량’입니다. 모든 연구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연구란 지극히 드뭅니다. 대부분의 논문은 선행연구와의 고투를 거쳐 연구 대상에 대한 차별화된 주장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작은 자료 하나를 대할 때도 거기에서 독자적인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무리 대가(大家)의 연구 업적이라도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훈련을 거듭한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 ‘차이를 만드는 역량’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대학원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발제와 토론, 학술회의나 세미나에서의 발표 등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공부의 형식들 하나하나가 이 역량을 갖추기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제 경우 박사학위를 받은 후 첫 전임교수가 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습니다. 인문학 분야의 특성상 여러 선배나 동료들을 봐도 5년 이상은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고려해 두 가지 Tip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지치지 말고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시라는 것입니다. 학계는 생각보다 좁고 소문이 빠릅니다. 좋은 연구자는 논문과 저서를 통해 금방 알려지고 인정받기 마련입니다. 이때 독자적인 영역,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는 사람이 탁월한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둘째,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맡든지 그곳을 빛내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몸도 마음도 고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동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 팀에서 자신이 담당한 역할 이상을 성심껏 감당하다 보면 반드시 주변의 좋은 분들이 그걸 알아주고, 그렇게 형성된 관계는 평생을 가게 될 것입니다. ▲ 학생들과 함께 ■ 유학대학 유학·동양학과 안승우 교수 - 1999년 유학동양학부 입학 - 2017년 박사학위 취득 - 2023년 유학·동양학과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에서 유학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졸업하고 지금은 모교인 성균관대 유학대학 조교수로 있는 안승우입니다. 수능을 보고 나서 갑자기 삶이 허무해져 ‘왜 살아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던 고3 겨울방학 때 유학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요. 이 공부를 해보고 싶어 우리 대학 유학동양학과를 선택해 지금까지 쭉 이곳에 있습니다. 삶, 인간, 세상에 대한 성찰을 얻고 싶어서 이 공부를 했는데,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고 공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함께 얘기하고 싶은 것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학생들이나 사람들이 절 보면 맑고 밝다고 하더라고요. 나름 어두웠던 삶의 곡절들이 많았기에 내면은 우울하고 암울한 면도 있지만 이 공부를 한 덕분에 그래도 사람을 만날 때나 삶의 과제를 대할 때 솔직하고 진실하게 마주하는 편인 것 같아요. 2023년 3월에 모교 교수로 부임했고요. 유학의 이야기들을 우리 삶과 현실에 의미 있는 이야기로 푸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타전공 학생분들도 제 수업에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서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분들과도 많은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유학이라는 분야는 우리 학교가 국내외에서 가장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유학, 동양철학만을 가르치는 곳은 성균관대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성균관대 유학대학 출신으로 전국 대학 철학과, 윤리교육과, 한문교육과의 교수로 가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학부 때부터 유학, 동양철학 관련 세부 전공 주제 과목을 다 들어서 제 전공이 아니어도 교육 현장에서 가르칠 수 있더라고요. 모교에 오기 전에 강릉원주대 철학과 조교수로 부임했었는데 그때 불교 빼고 모든 과목을 강의할 수 있는 제 자신이 신기했어요. 그래도 성대에서 배워서 이렇게 다 가르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성균관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열정적이셔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주해 학생들도 이를 경험할 수 있는데요. 조교, 연구보조원, 연구원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연구계획서 쓰는 법, 프로젝트 운용하는 법, 연구성과를 내는 법들을 익혔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연구재단 과제도 여러 번 수주할 수 있었고, 그게 하나의 능력이 됐던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저를 독려해 주는 좋은 교수님, 선배, 후배, 교직원 선생님들이 계셨다는 거예요. 연구와 교육실적이 어느 정도 쌓이면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 그때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가 사람이더라고요. 제대로 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누군가 저에 대해 물었을 때 긍정적인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 제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 그런 좋은 분들이 계신 곳이 성대였고 결정적으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으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때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했어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성대는 늘 활발하고 생동감 넘치는 곳입니다.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대학로에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고, 굳이 나가지 않더라도 성대 캠퍼스 분위기 자체가 도전과 시도를 긍정하는 곳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시절의 엉뚱함, 발랄함, 무모함이 지금의 저에게는 연구적으로 큰 자산입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 시도를 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학부 때 배웠습니다. 학부를 마친 후 석사, 박사를 다니면서 성대에 정말 감사한 건 충분히 공부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가정형편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대학원을 다닐 때 공부할 수 있는 만큼 버텨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박사까지 마칠 수 있도록 등록금, 생활비까지 해결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우리 학교입니다. 많은 지원과 함께 학교 일도 하면서 저와 같이 생계형인 사람이 박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기적입니다. 또한 유학, 동양철학 분야에서 최고의 대학이면서 우리 학교 자체에 대내외 교류가 많다 보니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학술대회, 세미나, 교수님들의 친분을 통해 국내외 유명 학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국내외 모든 교육‧연구적 인프라가 모이는 곳에서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 다른 학교에 가서야 알았죠. 우리 대학의 학문적 특징은 해당 분야의 정통 연구와 함께 최신 트렌드를 익힐 수 있는 연구가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저는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측면 외에는 공부적으로 그렇게 갈증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국제경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만큼 박사과정 때는 대만, 중국, 미국 등에 가서 발표 경험도 가질 수 있었어요. 석사를 마친 후에는 바로 박사로 들어오지 않고 중학교 도덕 교사, 시민단체 사무국장 등으로 5년여 동안 사회생활을 했어요. 늦기 전에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생활을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지금은 도움이 됩니다.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요즘같은 때 저의 추진력과 실행력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이러한 이력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 (왼쪽) 학부시절 축제 당시 성균관 유생들의 연극인 유희(儒戲) 포스터를 찍기 위해 모인 모습, (오른쪽)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한국유경편찬센터에서 동양신화를 소재로한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 당시 성균관대 동문인 보드게임 개발 기업 (주)젬블로컴퍼니 오준원 대표와 함께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의 전공분야는 유학, 그 중에서도 주역이에요. 주역은 유교경전 중 하나인데 특히 자연의 원리, 자연의 일부인 인간 삶의 원리를 담은 텍스트라고 여겨졌었기 때문에 과거 동아시아인들은 주역을 읽으면서 이 세상이 어떤 원리에 따라 흘러가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여러 삶의 국면에서 닥쳐오는 위기와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생각했죠. 저는 주로 한국유학자들이 어떻게 주역을 이해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속에서 드러나는 한국철학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유학이 현대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연구하고 있어요. 근래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연구는 주역으로 자원순환철학을 재구성해보고 우리 시대에 제대로 된 애도, 추모의 마음가짐과 방식이 무엇인가를 유학을 통해 고민했던 연구였어요. 유학을 연구한다고 하면 분야가 좁고 고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살면서 궁금한 거,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 풀어보고 싶은 사회문제를 유학으로 풀어요. 유학은 늘 새로운 성찰을 가져다주죠. 유학 연구에서는 무엇이든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공부가 재밌습니다. 앞으로 제 전문 연구분야에서 한국근대주역사를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한국 근대 시기에 서양학문이 쏟아져 들어왔을 때 충격과 좌절을 시간을 겪다 유학자로서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들이 유학 안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제 전공인 주역으로 풀어보고 싶어요. 또한 현대사회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학의 아젠다를 발굴해서 장기적인 사회운동, 문화운동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자원순환철학도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겠죠. 정말 이거다, 이걸로 사회에 뭔가 해보고 싶다는 확신이 드는 게 생기면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하나의 사회운동이 될 수 있도록 실천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그게 그나마 박사까지 받고 교수까지 될 때까지 사회에서 받았던 혜택을 환원활 길이 아닐까 싶어요.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카데미 안에서 공부한다는 건 자신이 전공하는 전문 분야에서 축적한 지식 위에서, 해당 분야의 문법과 언어, 형식으로 대화하고 글 쓰고 평가받기를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문학, 특히 철학을 선택하는 많은 대학원생들의 경우, 자신만의 고집과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 길로 올 수 있죠. 하지만 전문연구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때로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면서 수용적으로 전문 분야의 틀과 문법, 전문연구자들의 평가와 조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기본이죠. 하지만 그 기본을 익히고 나면 개척자가 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철학은 정답을 공부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학문적 상식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질문들이 제가 연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이었어요.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의문점을 파고 들어가고 그것을 학계의 문법에 맞게 글로 풀어가되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찾아가고. 끊임없이 학문적 틀을 익히고 여기에 익숙해지면서 다시 이걸 깨 가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워가고. 그런데 또 검증이 필요하니까 학계에 발표해 보고 또 깨지고 또 세우고. 그런 과정을 즐기고 두려워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문분야의 트레이닝에 열심히 임하면서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후학들에게 우리 학계는 생각보다 매우 너그러워요. 오히려 이런 후학들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 2024년 유학동양학과 학부 학생들과 경기도 화성 답사. 당시 학과장이셨던 유학동양학과 윤석민 교수님(왼쪽 하단)과 함께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본 경험들이 쌓여 남다른 나를 만들어갑니다. 연구자의 길을 택한다는 건 평생 어제의 나를 뛰어넘고, 벅차게 여겨지는 연구주제들을 해결해 가는 여정을 살아가는 길이죠. 그만큼 난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극복’한다고 생각하기보다 평생 닥쳐올 난관에 ‘익숙해진다’는 좀 더 가벼운 마음을 가지면 어느새 어떤 어려움이든 척척 해결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거에요. 아울러 우리 곁에 고민을 상담하고 도움을 줄 사람들이 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 No. 85
- 2025-07-24
- 7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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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생명공학과 양유수 교수, 전자전기공학부 이재현 교수
교육에서 연구로, 연구에서 교육으로
■ 생명공학대학 융합생명공학과 양유수 교수 - 2002년 유전공학과 입학 - 2012년 박사학위 취득 - 2025년 융합생명공학과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융합생명공학과에 재직 중인 양유수 교수입니다. 저는 2002년 성균관대학교 유전공학과에 입학해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고, 2012년 8월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학문적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 학교를 떠났습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아이오와주립대학교(Iowa State University)에서 박사후연구원(postdoctoral fellow)으로 연구에 매진했고, 2014년 11월부터 KIST 의공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2022년 3월부터는 KIST 바이오메디컬융합연구본부 의약소재연구센터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바이오소재 개발 및 유전자 치료, 세포 리프로그래밍 관련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2025년 3월, 약 12년 만에 모교인 성균관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하게 되어 매우 뜻깊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학생 여러분과 함께 융합생명공학 연구를 통해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성균관대에서의 학부 및 대학원 과정은 연구자로서의 기초 체력을 길러준 매우 소중한 시기였습니다. 학부에서는 유전공학을 중심으로 생화학, 분자생물학, 세포공학, 면역학 등 다양한 기초 및 응용 생명공학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융합적 사고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SNARE 단백질 기반 membrane fusion 메커니즘을 연구하면서 기초과학의 깊이 있는 탐구를 경험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제학술지(Science, PNAS 등)에 논문을 게재하는 기회도 생겼습니다. 특히 성균관대 (당시) 유전공학과의 개방적이고 협력적인 연구 분위기는 제게 공동연구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일깨워주었고, 이는 이후 다양한 다학제 융합연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저의 연구 방향을 정립하고, 실용적 연구로 확장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으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부에서 생명공학 전반을 공부한 후, 대학원에서 막단백질 및 신경전달물질 방출 메커니즘 관련 기초 연구를 수행하면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이후 박사 후 과정에서는 membrane fusion 연구를 neurodegeneration 영역으로 확장했고, 단분자 이미징 등 생물물리학적 기법을 융합하면서 연구의 깊이와 폭을 더했습니다. KIST에 선임연구원(PI)으로 합류한 이후에는 세포외소포체(엑소좀)를 활용한 세포 간 신호전달, 약물전달 시스템 개발, 세포막 편집기술, 유전자 치료 및 세포 리프로그래밍 등 바이오메디컬 융합 연구를 주도하며 산업화 및 기술이전에도 성공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경로 속에서 ‘기초에서 임상으로’, 그리고 ‘연구에서 실용화로’ 이어지는 융합적 연구 성과들이 모교에서도 의미 있게 평가됐다고 생각합니다. 성균관대 융합생명공학과의 비전과 제 연구 방향이 잘 맞닿아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임용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모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연구를 이어갈 수 있게 되어 매우 뜻깊습니다. ▲ 박사과정 당시 현수막 ▲ 박사 후 과정 동안의 연구노트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연구는 면역 미세환경을 리프로그래밍해 난치성 질환의 치료 저항성을 극복하고 무너진 면역 균형을 회복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이를 위해 세포외소포체(엑소좀), 항체‑약물 접합체(Antibody-Drug/Oligonucleotide Conjugate), 지질 나노입자(Lipid nanoparticle) 등 리프로그래밍 플랫폼을 개발하고 PROTAC, miRNA, siRNA, mRNA와 같은 리프로그래밍 도구를 활용해 유전자 발현과 단백질 활성을 정교하게 조절합니다. 관련된 논문으로는, 엑소좀을 이용한 세포막편집 기술-Adv Mater (2017), 막단백질 전달을 통한 항암 면역 리프로그래밍-Sci Adv (2020), 우유 유래 엑소좀을 활용한 경구 siRNA 전달 및 염증성 장질환 치료기술-Bioact Mater (2024), siRNA 및 miRNA 기반의 항암 면역 치료 기술-ACS Nano (2024), Theranostics (2024), LNP의 암 표적 전달 기술- Adv Sci (2023), ACS Nano (2025) 등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RNA 기반 치료제, PROTAC 등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체내에 전달하고 세포와 면역 반응을 새롭게 조정해 면역‧염증성 질환에 대한 차세대 치료 전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AI 기술을 접목한 리프로그래밍 기반 치료제의 타겟 발굴 및 예측 플랫폼 구축도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가장 필요한 역량은 '융합적 사고력'과 '문제해결을 위한 연구설계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단편적인 지식보다 여러 분야의 개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자신만의 연구 질문을 만들고, 이를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는 사고력은 고급 연구 역량의 핵심입니다. 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업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실험을 수행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세미나를 듣고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주기적으로 논문 읽기와 자기 주도 학습을 병행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연구에 ‘왜?’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가 쌓일 때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도구로 진화하게 됩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 2025년 스승의 날을 맞아 졸업생,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저는 후배이자 학생들에게 “대학생, 대학원생일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해보라”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시기는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연한 시기입니다. ‘실패’라고 생각했던 순간조차도 나중엔 값진 자산이 됩니다. 오히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던 경험이 훗날 여러분을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저 또한 대학원 생활 중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때마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버텼습니다. 실험이 계속 실패하거나 방향을 잃었다고 느낄 때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이나 랩 동료와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큰 위로와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들 때는 잠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저는 연구실에서 고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들과 단골 술집에 가기도 하고, 학교 은행나무길을 한 바퀴 돌며 산책도 하고, 일월저수지도 종종 찾았습니다. 머리를 식히고 나면 다시 나아갈 힘이 생깁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나’보다 ‘나는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걸어가는 모든 과정이 결국 여러분만의 서사가 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여러분은 아직 20대입니다. 실패라는 건 없습니다. --------------------------------------------------------------------------------------------------------------------------------------------------------------- ■ 정보통신대학 전자전기공학부 이재현 교수 - 2009년 신소재공학부 졸업 - 2014년 SAINT 박사학위 취득 - 2025년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25년 봄 학기부터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제1공학관으로 출근하고 있는 전자전기공학부 이재현입니다. <성균웹진>을 통해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2009년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를 졸업했으며, 2014년 성균나노과학기술원(SKKU Advanced Institute of Nanotechnology, SAIN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영국 맨체스터대학 국립그래핀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생활한 뒤, 2017년부터 올 2월까지 약 8년간 아주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2월부터 새로운 ‘성균가족’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제 연구 분야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차원 반데르발스 ‘소재’ 및 ‘응용’ 기술입니다. 원자층의 두께 수준으로 매우 얇은 이차원 소재를 크게 잘 만들고, 그것을 분석해 다양한 응용 분야(반도체, 에너지, 양자 등)에 활용하는데 기반이 되는 연구를 해왔습니다. 성균관대학교는 제 연구 분야인 이차원 소재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연구 기관으로, 뛰어난 교수님들과 함께 우수한 연구시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해온 기반연구에 더해 사회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또한 이곳에서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특히, 성균관대가 가진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 미래 핵심 반도체 기술인 3차원 메모리 반도체용 소재 및 공정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저의 연구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하나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여러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공학에서 발생하는 문제 또한 저는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그 문제를 바라보고 가장 최선의 방법들을 제안해 실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경험한 성균관대는 이러한 융합적 사고를 키우는데 가장 앞선 곳입니다. 이미 20년 전에 나노과학기술원(SAINT)이라고 해서 다양한 전공을 가진 교수님들이 나노라는 공동 테마를 가지고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최초로 구축했습니다. 박사학위 과정 동안 저는 신소재, 화공, 물리, 화학 등 다양한 전공의 과목을 수강했으며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자연스러운 교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융합적 연구 방식이 성균관대 모든 계열과 전공에도 확산되고 뿌리내렸다 생각합니다.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으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2002년 성균관대 공학계열로 입학해 2014년 성균나노과학기술원(SAINT) 에서 ‘2차원 소재의 합성과 응용’에 대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운 좋게도 같은 해 가을에 ‘대통령 포스닥 펠로우’로 선정돼,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박사후 연구원임과 동시에 과제 책임자를 맡게 됐습니다. 이듬해인 2015년 가을부터는 영국 맨체스터대학 국립그래핀연구소에서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신 K. S. Novoselov 교수님과 함께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이후 2017년 봄, 아주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 임용됐습니다. ▲ 학부시절 친구들과 참가해 장려상을 수상한 2008년 나노과학기술경진대회 당시 ▲ 2014년 겨울 박사과정 당시 황동목 교수님과 함께 소개된 학교 홈페이지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연구 분야는 차세대 3차원 반도체를 위한 극박막 반데르발스 소재 및 공정 기술 연구입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성균나노과학기술원 박사학위 과정에서 ‘웨이퍼 스케일의 단층 단결정 그래핀의 합성’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성균관대 공대 최초로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높은 핵생성을 유도한 후 단결정을 합성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제시했으며 제가 이차원 반데르발스 소재 연구를 시작하게 만든 논문입니다. 두 번째는 독립적인 연구자로 아주대학교에 부임한 후 저의 첫 번째 제자와 함께 발표한 ‘원자수준의 균열 제어를 통한 대면적 그래핀 박리 및 층수 제어’입니다. 이 논문은 반데르발스 결정 소재가 가진 구조적 특징을 이용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균열이 옹스트롬 단위에서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최초로 제안한 논문입니다. 이를 통해 최고 품질의 반데르발스 소재를 활용한 다양한 광전소자 연구를 시작하게 만든 논문입니다. 위 두 논문 모두 발표 이후 높은 피인용 횟수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성균관대에서 실제로 많이 사용될 연구, 그리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해보고자 합니다. 특히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성균관대의 뛰어난 연구진과 우수한 연구시설을 바탕으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술 개발에 집중해 보고자 합니다.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저는 실험을 하는 ‘실험연구자’입니다. 그래서 제 기준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실험연구자가 연구 성과를 잘 내는데 많은 지식 만큼이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거운 엉덩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험연구자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적으로 그 결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실험은 잘 되지 않는데요. 저희 학생들에게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안되는 게 실험”이라고 표현합니다. 실험이 잘 안되는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샘플이 잘못됐는지, 하필 실험하는 날 비가 와서 그런 건지, 결과가 잘 나왔는데 그걸 놓친 건지, 아니면 정말 내가 세운 가설이 맞지 않는지. 사람이 하는 일이라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걸 다 확인해 보려면 반복된 실험을 아주 많이 해야 합니다. 보통 이때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마무리할지 아니면 끝까지 가볼지.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인생에 한 번은 같이 연구하는 동료들, 교수님 그리고 스스로를 믿고 묵묵히 앉아 실험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무거운 엉덩이’를 갖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확실해야 하는데요. 학생마다 연구를 하는 이유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걸 찾게 된다면 자기 동기부여가 되고, 자기 동기부여가 확실한 연구자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무거운 엉덩이를 가질 것입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 2025년 성균관대학교에서의 새로운 시작 - Q-MAD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학위과정은 매우 힘들고 어렵습니다. 학생이 저희 연구실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보통 두 번 정도 돌려보내고 고민을 해본 후 다시 찾아오라고 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학위과정을 이겨내는 데 활용했던 저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일주일의 하루는 무조건 쉬기(멍때리기). 연구를 하다보면 365일을 쉬지 않고 출근하고, 강의 듣고, 실험하고, 논문 보고, 논문 쓰고, 회의하고를 반복합니다. 항상 같은 일과로 움직이다 보니 시간도 빠르게 흘러갑니다. 저는 학위 과정 동안 일주일 중 하루는 무조건 쉬면서 그 하루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늦잠 자고,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보고 싶은 것도 마음껏 보며 그날만큼은 실험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간 동안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저는 ‘멍때리기’를 즐겨 합니다. 두 번째, 잘 잊어버리기. 학위과정 때는 적어도 자기 동기화가 된다면 과거에 했던, 지금 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할 실험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학위과정 또한 사회생활이기 때문에 실험 생각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여러 생각들도 함께 하게 되는데요. 사람의 뇌 용량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학위 과정 중에 하루하루 생활하며 저를 기쁘게 했던, 즐겁게 했던, 혹은 기분 나쁘게 했던 일들을 잘 잊어버리는 습관을 갖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걱정도 많이 줄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위 내용들은 제가 경험한 것이기에 모두에게 맞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힘든 학위과정을 잘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꼭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즐겁게 졸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모두 원하는 결과 잘 내시고 무사히 졸업하시길 기원합니다.
- No. 84
- 2025-07-01
- 9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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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A 대표 권위상 동문(미디어커뮤니케이션 18)
어린 예술가의 날개가 되다
대한민국 최초 전국 미술대학 졸업 작품 아카이빙 플랫폼, PoA 대학 졸업 시 제출하는 졸업 작품은 미대생의 꽃이라 불린다. 학부 4년 동안 배운 기량을 한껏 소중히 담아 완성해 내는 하나의 작품은 학생으로서 찍는 마침표지만, 예술가로서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어린 예술가들의 붓칠을 소중히 여긴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모여서 졸업작품 아카이빙 팀 ‘PoA’가 탄생했다. 신진 작가들이 지닌 거장의 잠재력을 조명하기 위해 전국 미술대학의 졸업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PoA 공식 플랫폼에는 우리 대학을 시작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등 9개 대학과의 아카이빙 협업이 진행되고 있다. PoA는 오는 7월 신개념 전시 프로젝트 <2025 대학미술제: 캔버스 리그>를 개최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 꿈을 이어간다. <2025 대학미술제: 캔버스 리그>는 2024년도 전국 미술·디자인 전공 졸업생을 대학 대표 자격으로 선발해 블라인드 방식으로 경쟁하는 경연형 전시 프로젝트로, TV조선과 아트조선이 공동 주최하고 PoA와 아트조선스페이스(ACS)가 공동 기획했다. 1, 2차 예선이 지나고 본선 전시만을 앞둔 지금, 대표 권위상 동문(미디어커뮤니케이션 18)을 만나 PoA가 꿈꾸는 예술의 모습을 함께 그려 보았다.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경영학을 전공한 18학번 권위상이라고 합니다. | 동문님께서 대표로 계시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전국 대학 졸업 작품 아카이빙 팀 ‘PoA(포아)’를 소개해 주세요. PoA는 전국 미술대학의 졸업 작품을 아카이빙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며, 그곳에서 아카이빙된 작품과 신진 작가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전시 및 비즈니스를 확장해 나가는 팀입니다. PoA는 Piece of Art의 약어로, 예술 한 조각을 대중에게 선물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포아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선택하기도 했어요. ▶PoA 아카이빙 플랫폼 바로가기 현재 PoA는 대표인 저를 포함해 총 3명의 성균관대학교 학생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점은, 저희 팀이 성균관대 내 경영학회 '인액터스'에서 시작됐다는 건데요. 인액터스는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기를 지향하는 조직입니다. 그 안에서 팀원들이 모였고, ‘미대 졸업 후 작가로 살아가는 신진 작가들이 겪는 경제·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보자’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PoA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5~6명 정도의 팀원이 함께했지만, 현재는 학회 졸업 등의 이유로 정리되어 3명이 중심이 되어 팀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 졸업 작품을 웹에 아카이빙해서 지속 가능한 예술의 선을 그린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PoA만의 아트 스타트업 발상은 어디에서 시작됐나요? PoA는 사실 굉장히 사적인 대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저희 팀원 중 한 명의 지인이 미술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그분이 미술대학 학우로서 겪는 여러 어려움을 이야기해 줬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희는 신진 작가를 페르소나로 삼게 되었습니다. 신진 작가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어떤 문제 해결 방식을 비즈니스로 풀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운 좋게 미술대학원에 재학하시는 분을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찾아왔어요. 그분께서 미대생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졸업 작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실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졸업작품의 활용 가능성과 잊혀지는 작품들에 대해 집중하게 됐죠. 그때부터 저희는 “졸업 작품은 단순한 학과 과제가 아닌 작가로서의 첫 공식 작품”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졸업 작품을 매개로 예술이 대중에게 더 다가갈 수 있고, 신진 작가들의 현실적인 문제도 풀어볼 수 있는 사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희 팀 내부적으로도 졸업 작품에서 두각을 나타낸 분들이 현실적인 벽에 막혀 기회를 잃는 안타까움에 대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고요. 그래서 그런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신진 작가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 PoA 팀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현재 PoA에서는 우리 대학을 시작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등 9개 대학과 아카이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타 대학과의 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PoA의 졸업 작품 아카이빙은 정말 무작정 뛰어다닌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저희가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제작하고 있던 시점이 마침 졸업 전시 시즌(10~11월)과 맞물렸고, 그래서 처음에 성균관대 미술학과 졸업 전시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희는 서비스 계획과 개요를 담은 팸플릿을 직접 제작해 인쇄한 뒤, 서울과 수도권의 미술대학 졸업 전시 현장 50여 곳을 직접 찾아가 전시를 관람하고, 전시 위원회나 작가분들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 PoA의 아카이빙 취지와 방향성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드린 말씀은 이런 방식이었습니다. “저희는 신진 작가들의 졸업 작품을 기록하고 연결하기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을 저희 플랫폼에 아카이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만나 뵙기 어려운 지방 미술대학의 경우에는 비대면 미팅 요청을 드려 졸업전시위원회 또는 전시 담당자와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했고, 그 이후 참여를 희망하시는 작가분들의 작품을 PoA 웹사이트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협업을 확장했습니다. 현재는 어느 정도 PoA라는 브랜드와 신뢰도가 형성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방식이 조금 달라질 예정입니다. 일부 대학의 경우, 저희가 직접 먼저 미팅을 요청해 협력 관계를 맺고, 개인 작가분들은 PoA 웹사이트에서 작가 본인이 직접 등록 신청서를 제출하면 검토 과정을 거쳐 아카이빙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 PoA가 아카이빙 프로젝트로서 끌어내고자 하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많은 경우 졸업 작품은 단순한 과제로 취급되곤 합니다. 하지만 PoA는 그 작품을 작가의 첫 번째 공식 작품으로 바라보고, 그에 걸맞은 기록과 존중, 활용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PoA는 단순히 아카이빙에 그치지 않고, 이 첫 번째 공식 작품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비즈니스도 함께 기획하고 있습니다. 졸업 작품의 판매 및 렌탈 서비스, 졸업 작가와 기업/기관을 연결하는 인적 매칭 사업, 작품 기반의 콘텐츠/IP 확장 등이 그 예입니다. PoA가 기록하는 플랫폼을 넘어 앞으로 미술계를 이끌어갈 유망 작가들의 첫걸음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이며, 그들이 기성작가로 성장해 나가는 여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원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 저희의 비전입니다. [2025 대학미술제: 캔버스 리그] | 5월 7일 첫걸음을 내디딘 PoA와 아트조선이 공동 주최하는 전국 단위 예술 프로젝트, <2025 대학미술제: 캔버스 리그>는 어떤 배경에서 구상되었나요? 사실 저희 팀은 미술 전공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굉장히 특이한 팀입니다. 모두 예술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오히려 이 점이 저희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술계는 흔히 폐쇄적이고 진입장벽이 높다고들 하죠. 저희도 처음에는 그런 거리감과 어려움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하지만 만약 예술계 외부에 있는 저희 같은 사람들이 이 영역을 다룬다면 그 자체로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의 대중화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졸업 작품 아카이빙 플랫폼을 만들었고, 서비스를 본 아트조선 측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전시를 기획해 지금의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이 전시는 기존의 전시 형태들과는 다른, 경연 형식의 전시입니다. 음악에는 ‘프로듀스101’, 스포츠에는 ‘토너먼트’처럼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구조가 익숙하잖아요. 그런데 왜 미술계에는 이런 형태가 없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아트조선과 협업해 기존 미술 시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작품 및 공정성 중심의 전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학미술제’가 탄생했습니다. | <2025 대학미술제: 캔버스 리그>는 1, 2차 예선을 거쳐 본선 전시로 나아가는데요. 현 상황과 준비 중인 내용에 관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대학미술제는 현재 2차 예선을 마친 상태로, 본선 진출 작가들이 확정됐습니다. 저희는 본선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먼저 1차 예선은 PoA가 신진 작가분들에게 직접 신청을 받아 내부 심사를 통해 선정했습니다. 이때 심사는 작가 개인의 이력이나 배경보다는 작품 자체의 가능성과 독창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했습니다. 2차 예선부터는 대중 참여형으로 전환됩니다. PoA 공식 웹사이트에서 진행된 온라인 투표는 블라인드 형식으로 운영되며, 학교명이나 작가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오직 작품 이미지로만 평가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저희는 이 전시에서 무엇보다도 공정성과 객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미술계에서는 여전히 학벌이나 배경이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그것이 작품성을 가리는 장벽이라고 봤고, 그 벽을 허무는 방식으로 전시를 기획하고자 했습니다. 2차 투표 결과는 대중 투표 50%, 전문가 투표 50%를 합산해 본선 진출자를 선정합니다. 이렇게 선발된 작가들의 작품은 7월 29일부터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ACS)에서 본선 전시로 이어집니다. 본선 역시 블라인드 형식으로 운영되며 관람객은 작가 정보 없이 순수하게 작품만 보고, 감상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저희는 이 본선 전시를 차질 없이 준비하며 신진 작가들이 실질적인 주목을 받을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오는 7월, 대학미술제 본선 전시장에서 특별히 보고 싶은 장면이나 기대되는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대학미술제 오프라인 전시에서는 아트조선스페이스(ACS)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마치 팝업스토어나 축제의 장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저희 PoA는 지금까지 기존 미술 시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시도를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졸업작품을 ‘공식 작품’으로 보고 아카이빙한 것도 그렇고, 전시에 경연 요소를 넣어서 수상자를 가리는 구조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들이 바로 저희 PoA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본선 전시도 기존 전시와는 완전히 달랐으면 합니다. 예술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산책하다 들르듯, 마트에서 장을 보듯이 편하게 들어와서 작품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에 자유롭게 투표하고 가는 장면을 보고 싶어요. 전시장이 활짝 열려 모든 세대가 어우러지는 공간이 되는 것. 그런 장면이 저는 정말 기대되고, 보고 싶습니다. | 어린 예술가들을 위한 본격적인 첫걸음이 될 이번 대학미술제, 참여자들에게 어떤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참여하시는 작가분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대한민국의 신진 작가로서, 그리고 나아가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는 첫 출발점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처음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많은 신진 작가분들이 현실의 장벽에 작가의 길을 포기하거나 꿈을 접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가 그들에게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진심 어린 바람이 있습니다. 저희 PoA는 이번 대학미술제를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올해를 시작으로 내년, 내후년까지 이어지는 브랜드로서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이 될 수 있는 대표 전시로 자리 잡고자 합니다. <2025 대학미술제> 외에도 졸업 작품, 신진 작가들과 함께 기존에 없던 형태의 새로운 전시 기획을 계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또한 단순히 전시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들의 작품과 역량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해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과 잇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계속 실험하고 있습니다. PoA는 미래의 위대한 작가들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들의 시작을 함께 만들어가는 팀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기억해 주시고 관심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 ‘좋은 아카이빙’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아카이빙은 결국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예술계 바깥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그런 배경 때문에 어려운 점도 많지만 그래서 오히려 균형감각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예술가분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노력과 고민, 그리고 작품에 담긴 진심은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의 마음을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는 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의 의도, 고민을 대중이 파악하고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즉, 작가의 깊은 고민과 대중의 시선이 만날 수 있는 그 지점을 보여줄 수 있어야 좋은 아카이빙이라고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결국 예술의 대중화도 그 만남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때 가능한 것 아닐까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러한 고민을 통해 예술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습니다. | <2025 대학미술제>를 함께 만들어가는 마음으로, 성균인들에게 건네는 초대의 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성균웹진과 인터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고 PoA를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예술을 좋아하시는 분들, 혹은 평소 예술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들이라도 이번 〈2025 대학미술제〉는 분명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셨던 기존의 전시와는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7월 29일부터 8월 23일까지, 한 달간 광화문 아트조선스페이스(ACS)에서 진행되는 이 전시는 정말 축제처럼 누구나 와서 즐기며 편하게 작품을 보고, 좋아하는 작품에 투표도 할 수 있는 열린 전시입니다. 친구, 가족과 함께 그냥 산책하듯 들르셔서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 발견하고 가는 것. 그게 PoA가 꿈꾸는 예술의 모습입니다. PoA는 앞으로 새롭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신진 작가들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여정도 함께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No. 83
- 2025-06-17
- 6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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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태헌 예능 PD(신문방송학과 97)
열정과 좌절을 갈고 닦아 하나의 콘텐츠로
언가를 창작해 내는 사람은 어떤 힘을 가져야 할까.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닳고 닳은 좌절 위에 성장을 쌓아 올릴 용기와 인내일 것이다. 이번 인물포커스는 불후의 명곡, 개는 훌륭하다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의 반열에 올린 이태헌 피디와의 인터뷰를 통해 창작가로서 그가 갖는 신념에 관해 들어 보았다. 웃음과 감동을 만들어 내는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선 어떤 경험과 사유가 필요할까? 함께 알아보자. | 안녕하세요, 피디님.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현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97학번 이태헌입니다. 지금은 KBS에서 예능피디로 일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성균웹진을 통해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고 정말 반갑습니다. | 불후의 명곡, 트롯 전국체전, We‘re HERO 임영웅, 개는 훌륭하다, 등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성공시키셨는데 비결이 따로 있을까요? 우선 성공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프로그램의 성공은 늘 처절하게 쌓인 실패들 위에 간신히 올려졌던 것 같습니다.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들이 차가운 기획과 뜨거운 제작을 거쳐 드디어 방송으로 나갈 때까지 정말 많은 분과 고민하고 부딪히고, 심각한 상황들에 좌절도 하게 되는데요. 그 좌절들에 닳고 닳다 보면 어느새 빛나는 프로그램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물론 시청자들의 애정과 인정이 덧입혀져야 더 멋진 윤이 나게 되는데 그 과정 중의 즐비한 실패와 상처들이 쌓여야 비로소 명품 프로그램이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하되 포기하지 않고 갈고 닦다 보면 볼만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하신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있나요? 제가 방송사에 입사한 지 벌써 21년 차가 되었는데요. 그간 거쳐온 많은 프로그램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5년 정도 연출한 불후의 명곡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왕 조용필 씨를 비롯해 수많은 전설과 가수들을 만나 뵐 수 있었고, 기존 문법을 벗어난 연출로 뮤지컬, 국악 등 트로스 오버 장르의 대중화를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신인이던 잔나비, 포레스텔라, 국악인 김준수, 뮤지컬배우 민우혁 등 다양한 가수들과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되었고, 덕분에 제가 상도 많이 받았기에 매우 영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 피디 일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찼던 일 혹은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예능 피디라는 직업은 늘 힘들지만, 역설적으로 늘 보람찹니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연예인들과 수십 명의 스태프를 잘 설득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야 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회사와 시청자들의 냉혹한 평가를 바탕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일이 [개는 훌륭하다]를 기획하고 시작할 때였습니다. 당시 많은 펫 프로그램이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어 회사의 불안한 눈빛과 섭외 관련해서 꽤 난항을 겪었는데요. 7개월 후 첫 방송이 나갔을 때의 시청률도 1.9%로 아주 냉담했습니다. 당시는 출연자들을 달래고 작가들을 다독이며 회사의 압력 또한 견뎌내야 하는 고난과 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회의와 촬영의 과정을 거쳐 9주 만에 5%, 19주 만에 9%의 시청률을 찍으며 결국은 인정받아 프로그램을 반석 위에 간신히 올렸을 때가 가장 보람찼습니다. | 학창 시절 때부터 예능 피디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제가 KBS PD가 되고 난 후 중학교 동창회가 열렸습니다. 오랜만에 지겨운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한 친구가 학창 시절 각자의 장래 희망을 적어둔 앙케트를 가지고 왔었습니다. 다들 20년 만의 타임캡슐을 열듯이 신기해하며 살펴봤는데 거기에 제 장래 희망이 방송국 프로듀서라 떡하니 쓰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초등학생 시절 종이신문 TV 편성표에 줄 그어가며 본방 사수 하고, KBS, MBC 방청도 찾아다녔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성대 신방과에 지망한 이유도 PD가 되기 위해서였고, 흥이 넘치던 대학 생활도 피디가 되기 위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다니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 TV에 폭삭 빠져 깔깔거리고 프로그램을 짝사랑했던 한 테레비 키즈가 결국 예능 피디로 살고 있네요. |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는 언제부터 생각하셨나요?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건 부모님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어려운 상황이 생겨 가족들이 웃음을 잃어버린 시기였는데요. 그래도 [상상플러스]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만큼은 고민을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 낱말을 맞추려고 집중하다가 백승주 아나운서가 ‘공부하세요’라고 외칠 때마다 빵빵 터지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능 프로그램의 힘을 느꼈습니다. 결국 입사해서 예능 피디로서 백승주 선배와 같이 일하고, [상상 더하기] 피디로도 일하게 되자 부모님이 특히 더 기뻐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 피디가 되기 위해 한 노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콘텐츠에 빠져 살았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영화, 방송들을 보고 기획안을 써보고, 평가를 통해 개선안을 고민해 보는 과정들을 매일 반복했습니다. 물론 제가 언론사 지망생일 때는 방송사가 3개뿐이었지만 지금은 케이블과 종편에 유튜브 OTT까지, 미디어 생태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가득 차 넘쳐나는 콘텐츠 홍수의 시대인데요. 이럴 때야말로 넘쳐나는 것 중 내가 하고 싶은 연출의 방향성에 맞는 것들을 잘 골라 봐야 합니다. 콘텐츠의 영리한 선택을 통해 소비하고 갈무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책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주 매력적인 검은 거울(Black mirror)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물론 손안의 검은 거울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저는 여전히 종이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고전으로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인문 서적으로 지식의 영역을 넓히며, 소설로 부족한 감성을 채우면서 시대를 읽어야 합니다. 책으로 기본기를 갖추지 못하면 콘텐츠 소비에도 제약이 생기고, 훌륭한 콘텐츠 생산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할 땐 근본이 되는 탄탄한 논리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제작할 땐 대중들의 시각과 반응을 보기 위한 눈치가 필요합니다.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함으로써 자신만의 시각을 갖되, 대중들의 호응과 흐름을 읽어야 좋은 프로그램의 시작이 가능합니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여러 장르의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만들었지만, 앞으로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국악을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국악이라는 하나의 문화에 접근해 그 맛을 알기가 여러 가지로 힘듭니다. 국악의 본류를 클래식처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국악이 더 풍성한 크로스 오버를 통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장르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젊은 국악인들과도 만나고 새로운 기획을 작가들과 함께 고민하는 중인데요. 이런 시도가 쉽지 않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언젠가 인정받고 국악의 멋과 맛을 한 분이라도 더 느낄 수 있다면 아주 달콤할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애정하는 600년 전통의 성균관대학교 재학생 여러분, 실감 나지 않으시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의 가장 눈부신 순간입니다. 지금보다도 더욱더 빛나는 앞날을 꿈꿀 수 있는 오늘과 내 곁의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세요.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고민하신다면 더 행복해질 겁니다. 여러분의 이 순간들이 명륜당에 켜켜이 쌓인 그 세월만큼 모이고 모여 여러분을 더 힘차고 밝은 미래로 이끌길 바랍니다.
- No. 82
- 2025-06-04
- 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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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AI인터랙션융합전공 공근식 박사
단지 행복하기 위한 배움:수박 농부에서 양자역학 교수로
배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과 함께한다. 부끄러움이 아닌 즐거움이라는 생각으로 배움에 대하여 용기를 낸다면 누구든, 언제든 배울 수 있다. 삶의 여정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선생님을 찾으며 늘 학도(學徒)가 되길 자처해 온 공근식 박사는 올해 우리 대학에서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러시아에서 13년 동안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금요일마다 성균관대학교로 출근한다. 스물여덟, 대전 기차역에서 우연히 마주한 야학 전단은 다시 꿈을 꾸는 도화선이 됐다. 배우고자 하는 간절함에 응답한 여러 도움의 손길 속에서, 공 박사는 행복하기 위한 학업을 이어갔다. 수박 농부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물리기술원(MIPT) 박사에 이르기까지, ‘만학도의 전설’ 공 박사의 시간을 따라가 보자.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에서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대학원생들에게 양자역학을 강의하고 있는 공근식입니다.” | 1992년에는 농업 잡지에, 24년이 지나서는 모스크바 물리기술원(MIPT) 학술 잡지에 박사님의 인생을 관통하는 두 장면이 실렸습니다. 오랜 시간 만학의 길을 걷고, 성균관대학교 강단에 서신 소감이 궁금해요. 지금 성균관대학교에서 양자역학을 가르치는 것이 저에게는 참 신기하고도 운명적인 일입니다. 사실 처음에 큰 꿈을 안고 러시아에 갔을 때, 언어의 장벽에 막혀 한 학기 만에 퇴학을 당했어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시험 날짜를 알아듣지 못해서 결국 시험을 못 봤어요. 그런데 제가 유일하게 시험을 봤던 과목이 바로 양자역학이었습니다. 정식 과목은 아니고, 제가 원체 좋아해서 청강한 과목이었어요. 수업 시간에 갔는데 교수님께서 시험을 보라고 해서 보게 됐거든요. 그 양자역학 시험에서 제가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고, 교수님께서 저를 다시 러시아로 불러 주셨습니다. 제가 성균관대학교에서 그런 추억이 담긴 양자역학 과목을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다는 게 정말 큰 기쁨입니다. ▲ (좌) 농업 잡지 ‘농진종묘’, (우) 모스크바 물리기술원(MIPT) 학술 잡지) | 박사님께서 지나오신 삶의 여정을 들려주시겠어요? 저는 고등학생 때 수학이나 물리 쪽에만 편중해서 공부했고 나머지 과목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성적이 안 좋았어요. 2학년이 되니 격차가 더 벌어져서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다르게 할 것이 없으니, 집에서 수박 농사를 짓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 일을 하면서 공부와는 점점 멀어졌어요. 하지만 그렇게 농사 일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뭔가 제 마음에 차지 않는 게 있었어요. 매일 농장에 나가서 일을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는 마음이 해가 갈수록 점점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수박을 출하하러 갔다가 대전 기차역에서 제 삶을 바꿀 전단지 하나를 만났어요. 늘 전단지가 붙어 있는 곳은 무심결에 지나쳤는데 그날은 저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가서 야학교 전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바로 야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를 가르쳐 주셨던 세 분의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 계세요. 이수석 선생님, 박현철 선생님, 또 신건철 선생님은 당시 카이스트(KAIST)에서 박사 과정에 계셨는데 자원봉사를 하려고 야학교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셨어요.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낮에는 농사를 짓고 저녁에는 세 선생님께 물리, 수학 강의를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바쁘면 제가 카이스트에 가서 빈 강의실에서 또 강의를 들었어요. 그때 정말 행복했거든요. 그때는 답답함이라는 게 다 없어졌습니다. 이 세 분을 시작으로 제 만학의 길에는 수많은 은인이 있어요. 선생님들이 5년이 지나고 나가시는 것에 맞춰서 저도 검정고시를 보고 배재대학교에 04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배재대학교에서 물리학과 박종대 교수님을 만났고, 그분이 또 카이스트에서 청강할 기회를 선물해 주셨어요. 그렇게 이듬해 카이스트에서 청강하는데 진도가 빠른 데다 아주 어려웠기에, 저는 또 바로 옆 충남대학교를 찾아갔습니다. 딱 한 교수님, 박병윤 교수님 방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무작정 교수님께 가서 ‘교수님, 제가 물리 과목 좀 들어도 되겠냐’하고 물으니 기꺼이 찬성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카이스트에서 수업이 끝나면 충남대학교로 갔습니다. 거기 가서 똑같은 과목을 다시 들었고요. 그렇게 생활하다가 그때 배재대학교 화학과에 오신 고려인 교수님, 김용하 교수님께 틈날 때마다 러시아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모스크바 물리기술원(MIPT) 소속 두 분의 박사 연구원님이 배재대학교에 오셨습니다. 그중에 한 분께 또 부탁했죠. 시간 있을 때 저한테 물리 수업을 강의해 달라고요. 그러자 박사님께서 응해 주셨습니다. 근데 그분이 한국어를 못하셔서 영어로 강의를 해 주셨어요. 저는 언어는 못 알아들어도 수식은 알아들을 수 있어서 열심히 따라갔습니다. 그러던 중 그분이 제게 모스크바 물리기술원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곳에 가서 공부하면 지금 제게 없는 어떠한 시스템을 얻을 수 있다’라고요. 그렇게 저는 모스크바로 향하게 된 겁니다. 그곳에서는 한 학기 만에 퇴학을 당했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양자역학 교수님께서 저를 찾아 주셨고 물리학과에서 우주항공공학과로 과를 바꿔서 다시 그 학교에 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기술원에 들어간 이후로는 좋은 성과를 얻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이후에는 더 배우고 싶어서 포닥(Post-Doc, 박사후 연구원) 과정도 들어갔어요. 그렇게 실험실에서 유럽 우주국과의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전쟁이 나는 바람에 사업을 위한 자금이 모두 끊기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실험실에 있던 러시아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국인인 저도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성균관대학교 김장현 교수님께서 저에게 연락해 주셨고, 지금 성균관대학교에서 양자역학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되었답니다. | 충북 영동군이 고향이라고 들었습니다. 가까운 곳에 과학 도시 대전이 있다는 점에서, 과학을 사랑하는 박사님과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맞아요. 제 고향의 지리적인 위치도 큰 몫을 한 겁니다. 저희 농장이 섬처럼 돼 있습니다. 강 한가운데 땅이 있고 양옆으로 강이 지나가서 저희 농장 바로 아래에 물이 흘러요. 항상 농사지으러 나가면 금강을 바라보면서 물이 흐르는 걸 봤거든요. 제가 매일 보는 게 물이니까 물을 바라보면서 파동도 알게 되고 굽이쳐 가는 것도 유심히 보면서 즐거움을 찾았어요. 제가 크게 원했고, 무언가 배우고 싶은 그런 간절함으로 한달음에 찾아간 야학교에서 대전의 카이스트 물리학과 학생 선생님들을 만나게 됐죠. 영동에서 대전까지 여러 순간 속에서 저는 배재대학교, 충남대학교, 그리고 과학기술원 카이스트의 교수님들 등 많은 감사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공부가 즐거워 야학에 무려 5년을 다니셨어요. 지금도 남아 있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야학 과정이 보통 1년 6개월이지만, 저는 그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배우기 위해 다닌 것이었어요. 배움을 계속하다 보니 5년이 되었죠. 야학교에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분들이 많이 오세요. 대부분 고등학교를 못 다니셔서 많이 오셨습니다. 그 아주머니분들께서 선생님들 고생하신다고 야학교에서 저녁 식사를 그렇게 매일 꼭 해 주셨습니다. 선생님들도 아주 좋아하셨어요. 매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공부했던 따뜻한 기억이 지금도 가슴에 남네요. | 미지의 땅 러시아로 떠나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어떤 결심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오로지 배움의 열망이었습니다. 러시아로 가고자 결심한 데에는 배재대학교에서 만난 교수님들과 두 분의 러시아 연구원분들의 역할이 컸어요. 그분들이 학문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서 저는 많이 놀랐습니다. 무언가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었거든요. 그것을 배우고 싶은 욕망이 정말 컸는데, 그 시스템을 러시아에 가면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저는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갔습니다. | 춥고 낯선 땅과 어려운 과업 속에서, 학사-석사-박사 과정까지 13년을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얘기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제가 그 학문을 좋아했다는 겁니다. 공부하면서 몸이 아픈 적도 많았어요. 특히 치통이 심했는데요. 러시아 속담에 어떤 말이 있냐 하면 일 년의 반이 겨울이라고 합니다. 그 말이 맞아요. 매우 춥습니다. 치통은 찬 바람을 맞으면 더 아프거든요. 제가 한 번 치통이 오기 시작하면 2~3개월씩도 가고 너무 아파서 잠을 못 잤어요. 그 때문에 음식을 잘 못 먹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면 모두 관두고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강의실에 들어서면 그 생각이 싹 사라졌어요. 교수님이 항상 제가 모르던 새로운 것을 강의해 주거든요. 그럼 또 그것에 빠졌습니다. 몸이 아파도 교수님이 새로운 것을 알려 주시면 별것 아닌 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1년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게 등장하면 또 빠져들고 1년 지나가고, 한 해씩 지나서 그게 13년이나 지났습니다. | 금요일마다 국제관에서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의 ‘양자역학의 세계와 빅데이터’ 수업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석사 과정에 있는 원우들과의 만남은 어떠셨나요? 학생들 전공이 매우 다양합니다. 보면 경제학과 학생도 있고, 경제 경영학과 학생도 있고, 또 전자공학 학생도 있고 전공의 영역이 매우 넓어요. 물리학과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목이 양자역학인데 심지어 다른 전공 학생들이다 보니 처음에는 좀 어려워했습니다. 그게 제게도 충분히 느껴져서 그 학생들에게 최대한 맞춰서 하니까 그 학생들도 서서히 흥미를 느끼고 지금은 잘 따라와 줍니다. 그게 대견스럽고 고맙죠. 양자역학이 어쨌거나 많이 어려운 과목이거든요. 이렇게 열심히 따라오는 학생들을 보면 참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 인문사회과학캠퍼스 국제관에서 | 배우는 입장에서 가르치는 입장으로의 변화에서 특히 노력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도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배움으로써 지금까지 왔거든요. 제가 배우는 입장의 느낌을 잘 알고 있어요. 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이 어떤 마음 일지 잘 파악하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어려운 것을 조금 덜 어렵게 만들어 주려고 그 부분을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도 쉽지 않습니다. 분명 덜 어렵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자꾸만 어려워지더라고요. 더 쉽게 알려 주려고 하다 보면 예를 들어 양자역학인데 또 전자기학이나 연리학의 개념을 가져오면서 다른 학문에 손을 뻗는 경우가 있어요. 아이러니하게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연구하고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수박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자신을 만난다면 가장 먼저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당시 어렸던 저에게 세상은 제가 살고 있는 마을과 그 농장밖에 없었어요. 작은 세상 속, 작은 저였기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지금 와서 이야기해 줄 수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 시행하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성균관대학교 학도(學徒)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공부할 때, 미래의 길을 내다보기에 급급하지 말고 당장은 현재 얻을 수 있는 배움의 즐거움에만 온전히 집중하길 바랍니다. 제가 취직 시험처럼 직장에 관한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면 공부 못했을 거예요. 저는 나이도 들고 더욱 그런 것을 생각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러시아에서 공부할 때 정말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그저 내일은 무엇을 배울까, 그것만 생각했어요. '오늘 배운 거 어려웠는데 교수님 만나면 이것에 대해서 꼭 질문해야 하겠다' 딱 이 생각만 했습니다. 그래서 결과를 얻었습니다. 지금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학생들, 여러분은 공부에 더욱 신경 쓰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성급히 두 가지를 쫓다 보면 다 놓치더라고요. 공부에 진정히 임해야 그 공부에 대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답니다.
- No. 81
- 2025-05-16
- 2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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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균 교수와 이성균 교수
성균(成均)을 빛내는 성균:
성균관대학교의 성균은 이룰 성(成)에 고를 균(均)을 사용해 고르게 이뤄낸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 대학 경영대학, 의과대학에는 성균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두 명의 교수가 있다. 각자의 분야를 빛내고 있는 문과의 성균인 문성균 교수와 이과의 성균인 이성균 교수를 인터뷰했다. 이름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와 두 신임 교수의 연구를 향한 열정을 함께 알아보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문성균 교수 |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에 경영대학 신임 교수로 부임한 문성균입니다. 경영학 중에서도 마케팅 전략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성균 교수 | 안녕하세요, 저는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실 신임 교수로 부임한 이성균입니다. 세부 분야로 열대의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문성균 교수(왼쪽), 이성균 교수(오른쪽) ◆ 두 분 다 성함이 성균이에요. 성균관대학교 신임 교수로 부임하셨을 때 주위 반응이 어땠나요? 문성균 교수 | 저는 학부와 석사를 모두 성균관대학교에서 나와서 신기해하는 분들이 더 많으셨어요. 박사 과정 후에 이탈리아의 보코니 대학교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제 석사 지도교수님과 다른 교수님들께서 모교로 오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많이 말씀하셨어요. 실제로 이렇게 모교의 신임 교수가 되어서 감사하게도 주변 분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고 반겨 주셨던 것 같아요. 이성균 교수 | 저는 친구들에게 성균관대학교 신임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다고 말했더니 친구들이 ‘역시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고 하더라고요. 어렸을 때 군포시에 쭉 살았는데, 바로 옆이 성균관대역이었어요. 그때부터 항상 선생님들이 성균관대에 가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돌고 돌아오게 되니 신기한 것 같습니다. ◆ 이름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하나 들려주세요. 문성균 교수 | 저는 고등학생 때 문성고등학교를 다녔어요. 당시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이름 중 문성을 채웠으니, 성균관대학교에 가서 나머지 성균을 채우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정말 성균관대학교에 오게 되었네요. 제 이력서를 보면 이름 칸뿐만 아니라 성균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아요. 어떻게 보면 ‘성균’이라는 단어가 제 존재를 채워 주고 드러내 주는 것 같습니다. 이성균 교수 | 요즘 어머니의 성을 따르는 문화가 많이 보편화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내가 우리 어머니의 성을 따랐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봤었는데 어머니의 성이 양 씨라 절대 안 되더라고요. 그럼 저는 양성균이 되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미생물학 교실을 전공하다 보니 학교랑 전공까지 의도한 것처럼 되어서 성이 이 씨라 다행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 교수님들 각자의 전공을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문성균 교수 | 저는 마케팅 중에서도 마케팅의 재무적 효과를 측정하는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마케팅의 효과를 측정하고 또 그 효과가 기업 가치를 얼마큼 증가시킬 수 있는지 등 마케팅과 다양한 경영학 이론을 접목한 학제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성균 교수 | 저는 앞서 미생물학 중에서도 열대의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중에서는 말라리아에 대한 연구를 심층적으로 집중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라리아 백신 후보 물질 발굴과 말라리아의 감염 기전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 연구 분야에 대한 최근 관심사가 있을까요? 문성균 교수 | 저는 박사 학위 논문을 ‘마케팅과 관련된 정보가 기업의 투자에 어떤 실질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 작성했습니다. 시장의 변동과 마케팅은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마케팅 행동이 주가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주가 변동이 마케팅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결과에서 시작해서 법적 환경과 규제에 따라 마케팅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적 환경의 변화가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기업이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마케팅 활동을 증가시키기도 하므로 단순히 기업 환경적 문제를 넘어 법적, 정책적으로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케팅의 영역을 넘어선 학제적 연구를 꾸준히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이성균 교수 | 저는 말라리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말라리아는 열대열 말라리아예요. 사람을 많이 죽이기도 하고 배양이 가능해서 열대야 말라리아는 역사는 짧지만 엄청나게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승인된 백신도 있지만 제가 연구하는 삼일열 말라리아는 배양이 되지 않아서 백신 개발 속도가 더딥니다. 저는 다른 실험 모델을 사용해서 배양이 가능한 원충을 찾아내었고 결과적으로 단백질과 적혈구의 수용체가 감염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고 밝혀냈습니다. 물론 아직 확실하지 않은 주장이라 알아낸 메커니즘을 더욱 명확히 증명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 수행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백신을 좀 더 개발해 보고 싶습니다. 현재 나와 있는 백신은 말라리아 단백질과 B형 감염 단백질을 결합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몸이 말라리아보다 B형 감염에 더 큰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생각입니다. ◆ 마케팅과 미생물학이라는 세부 전공을 선택하신 계기가 있을까요? 문성균 교수 | 저는 원래 행정고시 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학부생이었을 때는 한국 문화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문화관광부에 들어가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알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석사 지도 교수님이셨던 한상만 교수님의 마케팅 관리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해야 하는 게 많은 수업이었지만, 그동안의 지루했던 전공 수업을 모두 잊을 만큼 재밌고 배울 게 많은 강의였어요. 마케팅에서 처음 배우는 고객 가치라는 개념과 이러한 고객 가치를 찾아내고 발전시켜 제공하는 마케팅의 과정이 제게 너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그래도 여전히 행정고시를 보겠다는 계획이 마음에 남아 있었는데 한상만 교수님이 행정조교를 모집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저답지 않게 충동적으로 조교를 하게 되었어요. 그게 전환점이 되어서 이렇게 모교의 신임 교수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이성균 교수 | 저도 처음부터 미생물학에 꿈이 있던 것 아니었어요. 학부가 생명공학과라서 실험을 자주 했습니다. 처음에는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니 재미도 없고 3개월 동안 실험해도 실패하던 걸 다른 동기는 바로 성공하는 걸 보고 실력 차이를 느끼기도 했어요. 그러다 선배가 의대 실험실을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선배가 한 번 실험실 놀러 오라고 해서 놀러 갔다가 섭외 당해서 대학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학부 때 3개월 동안 실패했던 실험을 석사 때 성공하면서 전공에 대한 뜻이 생겼어요. 실패하는 동안은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지만 계속 안 됐던 걸 성공하니까 엄청난 희열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뜻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도전의 과정에서 뜻이 생겼어요. ◆ 마지막으로 신임 교수로서 포부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문성균 교수 |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당시 평소에 존경하던 교수님께 어떻게 하면 교육과 연구의 조화를 잘 이룰 수 있느냐고 여쭤보았어요. 근데 교수님이 교육과 연구를 분리해서 하려고 하지 말고 동시에 같이 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교수는 지식을 생산하는 생산자고 학생들은 지식을 소비하는 소비자이니, 대학의 메커니즘 자체가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저는 생산자이자 학생들에게 배우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학생들이 갖고 있는 지식에 대한 니즈와 고민을 잘 파악해서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하고 싶습니다. 이성균 교수 | 아직 강의를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제가 석사 과정에서 느낀 성취의 경험을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는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빨리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요.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미생물학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경험을 하면 좋겠습니다. 성균웹진 김연후 기자
- No. 80
- 2025-04-29
- 9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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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교육과 민무홍 교수(컴공 03)
교수보다 동행자, 함께 꿈꾸는 성균인
언제나 학생들 곁에 있으려는 교수가 있다. 교내는 물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매체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전하는 컴퓨터교육과 민무홍 교수(컴퓨터공학과 03)는 늘 학생들의 시선과 트렌드에 깊이 공감하며 발맞추고 있다. 정보보안과 인공지능을 전문으로 연구하며, 도박 중독 및 예방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민무홍 교수는 현재 ‘AI 기초와 활용’ 수업에서 인문사회과학캠퍼스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2003년 학부생으로 학교를 찾았던 그가 어느덧 교수로 교정을 거닐고 있다. 그의 행보는 온통 학생들을 위한, 학생들에 의한 활동으로 채워져 있다. 애교심 가득한 그가 들려주는 성균관대학교와 학생들을 향한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자. “컴퓨터교육과 민무홍 교수입니다. 우리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03학번으로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 10학번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고려대학교에서 정보보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는 모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 학부생 시절부터 인연을 쌓아오신 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실 것 같아요. 대학과 처음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나가네요. 과거 유행했던 싸이월드에 학교 이야기가 담긴 사진들을 많이 올렸었는데 지금은 보여드릴 수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분당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자연과학캠퍼스행 셔틀버스가 지나다니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학 전부터 우리 학교에 관심이 많았어요. 원서를 내는 시점에도 자연스럽게 우리 학교를 지망했고, 정보통신계열로 입학했습니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재수나 반수는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었고 바로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고교 시절 막연하게 눈길이 갔던 셔틀버스를 실제로 타게 되니 편리함을 넘어서 특별한 감회가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대학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합격자 발표 날부터 '여기가 내 학교다'라는 마음가짐이 우리 학교 애정의 시작인 것 같네요. 저는 우리 학교 축제를 좋아하는데요. 주변에서는 축제가 재미없는 학교라고 놀렸지만 전 재미있었습니다. 재미는 스스로 느끼는 것이니까요. 축제를 좋아하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응원단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보다 흥이 많은 편이거든요. 저는 어렸을 때 응원단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아 해보지 못했어요. 회귀물이 유행이던데 제가 만약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로또를 사는 게 아니라, 반드시 응원단 면접을 볼 거예요. 축제 때 나눠주는 학교 굿즈를 열심히 모으는 편입니다. 2003년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모아 둔 티셔츠와 후드 티를 아직도 가지고 있고요. 입학식 때 처음 발급받은 학생증, 학교에서 매년 나눠주던 다이어리도 갖고 있습니다. 임용된 이후인 지금도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날에는 평소에 모아둔 용돈을 화려하게 소진하곤 합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상당히 많은 학교 옷을 구매했는데요. 우리 집 옷장 하나가 학교 옷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날에 기분 전환 겸 학교 잠바와 후드 티를 입고 나오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 지난 2월, 컴퓨터교육과 홍보부와 함께 올린 릴스가 학생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어요. 인기짱 교수님으로서 소감이 어떠세요? 인스타그램 릴스 영상 말씀이군요! 다시 찾아보니 제가 찍힌 두 동영상의 조회수가 각각 14만 5천, 9만이나 되네요. 어쩐지 오가는 길이나 셔틀버스에서도 학생들이 엄청나게 인사를 해주더라고요.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설프지만 학생들이 그런 모습까지도 재미있게 봐줬다는 게 오히려 감사할 따름입니다. 학과에서 홍보를 위해 찍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서 찍게 되었는데요. '인기짱 교수님'이라는 수식어는 아직 어색합니다만, 이런 소통 방식이 학생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찍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야 다 준비된 판 위에서 열심히 춤을 췄을 뿐이고, 컴퓨터교육과 홍보부 학생들이 기획하고 편집하느라 고생이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 컴퓨터교육과 홍보부(@com_on_skku) 릴스 | 성균관대학교 공식 유튜브 ‘스꾸인터뷰’ ASMR 영상에 출연하셔서 친근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셨어요. 특별한 촬영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 경험이었나요? 영상학과 진빛남 교수님과 함께 진행한 ASMR 촬영은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평소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죠. ASMR을 즐겨보던 편이 아니어서 어떻게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까닭에 현장에서 학생들의 안내를 받아 가며 참여했습니다. 슬라임을 만지는데 손에 녹듯이 묻더라고요. 제가 손이 따뜻한 편이고, 용암 손이라는 을 알게 되었습니다. 촬영도 재미있었고, 촬영 후 학생들이 많이 알아봐 주셔서 뿌듯했습니다. 덕분에 ‘MBC 생방송 오늘 아침’에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행복하고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아주 조금 망설인 부분도 있었지만, 학생들이 교수를 더 인간적으로 느끼고 친근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면 분명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감과 소통도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앞으로도 이런 색다른 소통의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 참여하고 싶고요. 저는 뭐든 시켜만 주시면 더 열성 있게 참여할 자신 있습니다. 많이 섭외해 주셔요. | 민무홍 교수님의 유튜브 채널, ‘로그몬 민무홍’ 이야기를 해볼까요. 로그몬은 어떤 의미이고 ‘무홍이의 브이로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처음부터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수업 조교들을 통해 제가 맡고 있는 대규모 사전 녹화 강의는 대부분의 학생이 단순히 틀어 놓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전용 수업이다 보니 제가 어떻게 가르치든 지루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제 수업에 재미의 요소를 넣어보고 싶었습니다.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학생들과 거리감을 줄일 방법을 고민하다가 대학 브이로그가 유행이라는 말에 저도 브이로그를 촬영하여 아이캠퍼스에 업로드했습니다. 콘텐츠를 고민하다 매주 금요일마다 인사캠 학생들이 자과캠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제가 잘 알고 있는 자과캠을 소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동제가 열리는 자과캠에 가서 브이로그를 촬영했고, 바로 이어서 인사캠 대동제도 TA들과 함께 촬영해 업로드 했습니다. 신선한 시도여서 그런지 입소문이 났고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다만 이 영상이 아이캠퍼스에서 제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만 열려 있다 보니, 모두가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선 촬영 섭외를 부탁한 친구들조차도 브이로그를 본 적이 없고, 촬영장에서 아이캠퍼스에 접속해서 영상 한 번만 보여달라는 부탁을 듣고 나니, 전에 아이캠퍼스에 올려둔 영상들을 유튜브에 올려 관심 있는 학생이 모두 볼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채널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 로그몬 민무홍 유튜브 채널 로그몬이란 로그와 몬의 합성어입니다. '로그(Log)'는 컴퓨터공학에서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동안 상태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포켓몬스터의 '~몬'이라는 접미사를 붙였습니다. ‘몬’은 보안에서 사용하는 모니터링의 약자기도 합니다. 그렇게 로그몬이라는 이름이 붙었답니다. 앞으로는 채널 내 영상 콘텐츠를 다양하게 제작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습니다. 현재는 축제 영상이 전부지만 취미 생활도 올려보고, 연구실에서의 일상, 논문 쓰는 과정, 학회 참석기 등의 내용을 담아보고 싶어요. 미리 찍어둔 영상들도 있는데 아직 편집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와 유튜브를 함께 운영해 볼 친구들을 구하고자 합니다. 편집과 기획, 촬영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연락 주면 좋겠습니다. 저와 함께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면서 우리 학교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 동참할 친구들을 찾고 싶어요. | 민무홍 교수님을 축제 기간에 학교에서 만나면 굿즈를 주신다고 들었어요. 굿즈에 있는 교수님 시그니처 캐릭터의 탄생 비화가 궁금해요. 수업 시간에 아이캠퍼스를 통해 공지 사항을 올릴 일이 있었는데 공지만 올리는 건 너무 심심해 보였어요. 간단한 캐릭터를 하나 곁들여 봐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이 캐릭터도 점점 진화하면서 몇 가지 버전으로 변형되었는데요,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하여 공지를 띄울 행사 포스터도 만들어보고, 명절 축하 인사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를 가지고 뭔가 다른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는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재미 삼아 작은 스티커 아이템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축제 때 저에게 다가와 인사하고 사진을 같이 찍거나, 브이로그 촬영에 함께 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굿즈를 나눠 주었습니다. 지금은 메모 패드, 캐릭터 집게 등으로 확장되었고, 메모 패드 이미지는 굿노트 템플릿으로도 제작되어 연구실 홈페이지(https://swlab.skku.edu)에 공개 배포 중입니다. 이런 캐릭터와 굿즈들은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전 직장 후배인 아내 머릿속에서 대부분 나옵니다. 디자인부터 여러 굿즈들을 기획하여 학생들에게 무엇을 나눠주면 좋아할지 같이 고민해 보고요. 올해도 축제 기간에 선보일 신상 굿즈를 기획하고 있으니 많이 기대해 주세요.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제 캐릭터인 ‘무홍이’가 우리 학교 마스코트인 ‘명륜이’, ‘율전이’와 함께하게 될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협업 굿즈를 만들 기회를 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고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 작년 10월, 인문사회과학캠퍼스 금잔디 광장에서 경제대학X사회과학대학 연합 문화제 ‘추(秋)억을 걷는 시간’에서 퀴즈쇼 ‘문제해결과 알쏭달쏭’을 진행하셨어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고, 어떤 행사였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학생들이 요청하면 못 할 것이 없죠. 사과대 학생회에서 연락을 주셨고 결국 금잔디 무대 위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학생회에서 제게도 의견을 물어봐 주셔서 당초에는 저와 학생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콘솔 게임을 즐기는 콘텐츠도 제안했는데요. 게임처럼 빠른 동작은 당시 설치되는 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 퀴즈 형태의 무대가 포켓몬 맞추기, 티니핑 맞추기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여 소통과 재미를 추구하는 형태로 기획되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문제해결과 알고리즘’이라는 과목을 강의했거든요. 이 강의 이름을 조금 변형하여 '문제해결과 알쏭달쏭' 퀴즈쇼가 만들어졌습니다. 단과대 행사였음에도 감사하게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함께 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의 행사에 교수가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학생들로부터 응원을 받는 것이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게임 콘텐츠를 진행하기 어려워 아쉬웠지만, 언젠가는 꼭 E 스포츠 게임 대회가 금잔디에서 열렸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제가 사회를 보든 참여하든 응원하든 뭐든 할 테니 꼭 불러주세요. | DS교과목을 운영해 오시면서 좋았던 점이나 아쉬웠던 점이 있으신가요? 좋았던 점은 다양한 학과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전체 학생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특히 저는 시험을 오프라인으로 치고, 시험 시작 전에 한 번씩은 인사를 해왔는데요. 이번 학기에는 수강생이 1,200명이나 되다 보니 그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운영하기 쉬운 과목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DS교과들은 전공이 아닌 교양 수준에 맞춰서 수업이 설계되므로, 이미 중고교 시절에 개인적으로든 교과 과정으로든 어느 정도 배우고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매우 쉬울 것입니다. 반대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수업일 수 있습니다. 이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약 전공자에게 가르치는 과목으로 설계되었다면 강의 내용에 중점을 둘 수 있지만 교양 수준의 지식 함양을 목표로 한 과목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DS교과에 관심도가 높아지고 이를 반드시 이수해야만 졸업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느끼는 피로도와 부담, 그리고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워낙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라 학기마다 과제가 새롭게 개편되고, 족보의 거래를 막기 위해 시험 문제가 변경되어 출제됩니다. 일부 유사하거나 겹치는 문항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유형 또한 바꿀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족보 덕을 못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족보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 주세요. | 공학도였던 민무홍 교수님의 모습도 궁금합니다. 캠퍼스에서 보낸 청춘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공학도라 하기에는 유별난 학생이었어요. 저는 경영이나 마케팅,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고 다른 과에도 상당히 기웃거리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수전공까지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제 전공을 열심히 살리면서 외부 활동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외부 연합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를 소개하자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경제 교육을 하는 JA (Junior Achievement) 라는 교육봉사NGO단체에서 대학생경제교육봉사단이라는 대학연합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수많은 초등학교에 가서 교육을 진행했고, 우리 학교 대표를 맡았을 뿐만 아니라 전체 대학 연합동아리에서 부회장까지 할 만큼 열성적으로 활동했습니다. 회사원이 된 이후에 봉사나 특강을 하러 갔던 적도 있었고, 당시 같이 봉사활동 했던 동아리 친구들과의 인연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보물이 위치한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이 있었습니다. 육군으로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해서 1년간 학교를 더 다닌 시점에 무작정 휴학을 하고 인사캠에 갔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맑은 하늘 아래 명륜당과 바라만 봐도 역사가 느껴지는 웅장한 은행나무를 제대로 즐겼습니다. 교수님들께 사전에 허락을 받아 청강도 해보고 즐거운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었던 찰나에, 리먼 사태가 터졌습니다. 취업이 더 어려워지다 보니 취업 스펙을 준비하면서 대회나 공모전을 자주 나갔습니다. 학교 이름을 걸고 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면 제가 학교를 빛낸 학생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학교 이름을 더욱 빛내기 위해 애정을 가득 담아 참여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안철수연구소 외에도 넥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미래에셋증권에서 회사 경험을 했는데 학교 덕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 2004년 5월, 성균관대학교 강당에서 학부 시절에는 과제를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밤새 코딩하던 기억, 시험 기간마다 도서관에 자리를 맡겠다고 새벽같이 나왔던 추억, 봄이면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걸었던 넓은 자연과학캠퍼스 풍경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오래 앉아 있던 편이었는데요. 도서관이 문 닫을 때까지 공부하다가 교가를 들으며 걸어 나오면 뭔가 뿌듯하면서도 ‘그래 등록금이 아깝지는 않아’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성적과 공부 시간이 비례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놀지도 않고 뭔가 열심히 산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2004년 카트라이더에 빠져 살았던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제가 넥슨에 취업한 계기는 오로지 카트라이더 때문입니다. 당시 ‘성대사랑’이라는 우리 학교 전용 커뮤니티에서 카트라이더 클럽을 운영했습니다. 학우들과 함께 스쿨 카트를 타내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카트를 달렸던 일, 팀을 모아 대학 챔피언 토너먼트에 나가서 온게임넷까지 출연해 본 일, 모두 다 2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 교수라는 직업의 벽을 허물고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교수님을 학생들 곁에서 함께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학생들과의 교류는 제게도 큰 즐거움이고 배움의 기회입니다.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IT 분야에서는 학생들이 더 새로운 기술이나 플랫폼에 능통하고 적응력이 좋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배우는 게 더 많습니다. 그들의 신선한 관점과 아이디어는 제 연구에도 많은 영감을 줍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을 넘어서 진정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그들의 성장 과정에 제가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가 교수로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자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교육은 지식 전달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저같이 친구 같은 교수도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교육은 소통과 공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겪는 고민과 어려움, 그리고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멘토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같이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단순한 지식보다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성이 중요한데, 이런 능력은 권위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소통 환경에서 더 잘 발달한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뒤에서 늘 교수님을 응원하는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제자이기도 하지만 제 20년 후배들입니다. 사회에 나가는 시점부터 성균관대 졸업생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기회를 얻게 됩니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기회를 다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 이름 덕분에 기회는 더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저, 민무홍입니다. 그만큼 성균관대학교라는 이름이 주는 가치는 큽니다. 저는 우리 학교에 돌아오면서 제 후배이자 제자들이 성균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여 제2의 민무홍이 몇 년 뒤 우리 학교의 교단에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끝으로 여러분의 응원과 지지가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강의실에서, 온라인에서, 때로는 셔틀버스를 포함한 캠퍼스 곳곳에서 여러분과 만나는 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입니다. '교수'라는 직함 이전에, 저도 여러분처럼 꿈꾸고 도전하는 성균인입니다. 완벽한 정답을 갖고 사는 교수자가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동행자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학생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더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는 교수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면 더욱 재미있는 콘텐츠들로 학생들과 함께 즐기며 학교생활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No. 79
-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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