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누군가의 성장을 함께 보고, 응원하고, 필요한 조언을 나누는 일 자체가 참 좋더라고요. 비록 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멘토링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구글 엔지니어 Tux 박수진 동문(소프트웨어학과 14)
#Tux
성균관대학교 에브리타임 검색창에 위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서른 편이 넘는 글이 나온다. 2019년에 첫 글을 올린 이후 지금껏 후배들의 진로 선택에 밀도를 더해온 펭귄 프로필의 닉네임 Tux는 바로 소프트웨어학과 14학번 박수진 동문이다. 후배들이 따라 걸어올 수 있도록 발자국을 글로 새기며 일명 ‘활자’국을 남기고 있는 그녀는 진로 고민 속에서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는 성균관대의 고마운 펭귄이다.
2025년 6월 24일,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자유게시판에 ‘구글 합격 후기’라는 제목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학부연구생 Tip’, ‘미국 CS 대학원 박사과정 합격 후기’, ‘메타 출근 한 달차’ 등 대학원, 유학, 해외 취업과 관련된 궁금증을 친근하게 풀어주고, 유학 상담이나 서류 첨삭도 도와주며 후배들의 곁을 지켜온 Tux가 구글 입사 소식을 전한 것이다. 후배들의 무수한 축하와 감사 인사를 받으며, 이제는 구글 엔지니어로 활약할 그녀를 인터뷰했다.
|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프트웨어학과 14학번 박수진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에브리타임에서는 닉네임 Tux로 활동했습니다. 2019년에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원에서 Computer Science 박사과정으로 공부하다가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졸업 후에는 올해부터 구글 Cloud Infrastructure 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로 제 얘기를 나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균관대 에브리타임에 작성한 구글 최종 합격 후기 글이 큰 반응을 불러왔어요.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리크루터로부터 합격 전화를 받던 순간의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모든 인터뷰가 1대 1로 진행되었다 보니, 사실 인터뷰 과정에서 인터뷰어의 반응이나 티키타카를 통해 제가 잘하고 있는지를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었어요. 다행히 대부분의 인터뷰가 긍정적으로 흘러갔던 편이라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무사히 오퍼로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인터뷰 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기쁨은 그다음이었고요. 그 후에는 이후 예정되어 있는 다른 회사들과의 인터뷰 일정이나, 연봉 협상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줄곧 학교에만 있었던 터라 연봉 협상을 해 볼 일이 없었고, 노련한 리크루터와 영어로 협상하려니 또 공부할 게 많더라고요.
▲ 성균관대 에브리타임 자과캠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구글 합격 후기’
| ‘Tux’라는 이름으로 작성한 글이 어느덧 30편을 넘겼어요. 후기 글을 꾸준히 쓰게 된 계기와, 글을 쓸 때 담으시는 마음이 궁금해요.
성균관대에 입학한 뒤, 학과의 지원으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새로운 세상을 접할 때마다, 또 졸업 후 멋진 커리어를 시작한 선배들을 볼 때마다 제 목표가 매번 업데이트되었거든요. 저도 그런 경험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만큼,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고등학생 때는 내신이나 모의고사 등급처럼 눈에 보이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그냥 주어진 기준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됐어요. 그런데 대학에 와보니 단순히 학점을 잘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성공이라는 게 어디쯤 있는 건지 종종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열심히 해 봤는데도 안 되는 거라면 할 수 없겠지만, 그런 길이 있다는 것조차 몰라서 노력도 못 해보고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 또한 저학년 때는 해외 유학은 저와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3학년이 되어서야 이런 진로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소프트웨어학과가 2011년에 생겼고, 제가 4기이다 보니 미국 박사과정을 준비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 정보도, 진학한 선배도 없어서, 내가 과연 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괜히 헛바람이 들어 불가능한 꿈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건지조차 명확하지 못해서 불안했습니다. 그럴 때, 한 명의 선배라도 선례를 만들어 주면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준비할 수 있어서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후배들에게 이런 방향의 진로도 있다는 것을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이런 길도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음 목표나 꿈을 그려 나가는 후배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글을 작성했습니다.
| 2019년 2월에 ‘학부연구생 시작 Tip’이라는 글을 올려 처음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을 전했어요. 동문님의 학부 시절도 궁금합니다. 처음 학부연구생(대학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부연구생을 처음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오히려 취업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당시 소프트웨어학과에서는 3학년이 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학부연구생을 시작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저 역시 큰 고민 없이 다들 하니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3학년쯤 되면 슬슬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 진로를 정하라고들 했는데, 당시의 저는 정작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꽤 답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어요. 아직 딱히 제대로 해본 것도 없는데,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좋아하는 걸 찾는 건 어려웠지만, 잘하는 걸 좋아하게 되는 건 쉬웠어요. 학부연구생을 시작한 후 연구실에서 매주 세미나에 참여하고, 논문 스터디를 하고, 국내 학회 논문도 작성하는 과정에서 박사과정 선배들께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연구가 점점 재밌어지고 좋아졌어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밤늦게 연구실에 남아 공부하는 날이 많아졌고, 자연히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 학부 졸업 후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Tech) 대학원에 진학하셨어요. 결심 끝에 진학하신 CS 박사과정 중 “이 길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이 있었나요?
안 그래도 힘든 박사과정인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국에서 모든 걸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현실은 처음 예상하고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모질고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대학원 유학이 이렇게 다사다난한 여정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오히려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역경들을 하나씩 이겨내며 조금씩 성장할 때마다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하게는, 유학을 나오기 전보다 영어가 한층 편해졌고, Meta, Microsoft 같은 여러 빅테크 기업에서도 연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요.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
▲ Meta, Microsoft
제 분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 좋았어요. 또 전 세계에서 모인 똑똑한 친구들이 가득한 환경에서, 서로 배우고 자극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네트워크 역시 유학을 통해 얻은 큰 자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모두가 낯선 타지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던 신입생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친구들이 전 세계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되거나 주요 테크 기업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 새삼 신기합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선택한 덕분에 더 많은 기회와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다사다난한 여정이라고 언급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 덕분에 제 20대가 다채로운 경험으로 가득 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틀랜타에서 시애틀까지 40시간이 넘는 거리를 무려 두 번이나 차로 직접 횡단하기도 했고, 열 곳이 넘는 미국 국립공원들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스위스에 있을 때는 여름이면 호수에서 수영하고, 겨울이면 알프스에서 눈썰매를 타고 산에 내려오며 주말을 보내기도 했고요. 학문적인 성장만큼이나, 삶 자체가 넓어지고 풍부해졌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여정이었습니다.
| 세계 최고의 IT 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기술 혁신의 중심지, 미국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에서 메타(Meta) 방문 연구자로 일하셨어요. 많은 개발자가 한 번쯤 꿈꾸는 무대에서 실제로 살아 보고 일해 본 느낌이 궁금합니다.
저도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는 만큼, 실리콘밸리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습니다. 마침 Menlo Park에 있는 Meta 본사에서 7개월간 방문연구원(Visiting Researcher)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처음에는 졸업이 늦어질까 봐 조금 망설이기도 했어요. 그래도 ‘한 번쯤 꼭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하게 됐습니다.
메타에 다니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건 의외로 ‘괴리감’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있을 때보다 업무 강도도 더 낮고, 밤새우는 일도 없고, 일과 삶의 균형도 지켜가며 더 여유롭게 일했는데, 제가 작은 것 하나만 완성해 가도 팀원들은 아낌없이 칭찬해 줬고, 월급은 2~3배를 줬거든요. 현실에서는 늘 시간도, 돈도 부족한 대학원생이었던 제가 갑자기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아도 되나 싶은 어리둥절함이 메타에서의 첫인상이었습니다.
근무 기간 동안 인상 깊었던 건, 회사가 개발자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루 세 끼 식사는 물론이고, 커피, 아이스크림, 베이커리 같은 간식도 무제한으로 제공되었고요. 업무에 필요한 장비들은 오피스 곳곳에 놓여있는 자판기에서 사원증을 찍기만 하면 바로 뽑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비행기도 비즈니스석으로 끊어주고, 현지 정착을 도와주는 전담 매니저가 배정되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짐을 보내는 일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무 상담도 한국과 미국 각각 전문가를 붙여줬고요. 제가 일하던 2022년에는 출퇴근에 대한 제약도 전혀 없었고, 원한다면 100% 재택근무도 가능했습니다. 미팅 시간만 잘 지키면 언제, 어디서 일하든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개발자들이 업무 외적인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회사가 환경과 시스템을 최대한 지원해 주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크게 느낀 건,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만 출근한다더라,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한다더라 하는 얘기들을 들으며 많은 분이 부러워하지만, 제가 체감한 절대적인 업무량은 오히려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았습니다. 다만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성실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없을 뿐이죠. 한국에서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메타에서 재택근무를 할 때는 하루 종일 정말 열심히 일했더라도 그날따라 코드가 풀리지 않고 진전이 없으면 하루 종일 논 것과 다름없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체감했던 시기였습니다.
| 첫 논문이 컴퓨터시스템 분야 최상위 학회인 OSDI(Operating Systems Design and Implementation)에 채택되었어요. 처음으로 작성한 논문이라 더욱 의미가 크실 텐데, 자세한 이야기와 함께 성과를 자랑해 주세요.
박사과정 3년 차에 작성한 논문으로, 고성능 컴퓨터에서 CPU 코어를 추가하면 성능이 더는 올라가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시스템 분야에서는 흔히 관측되는 현상인데요, 저는 이를 운영체제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기법을 제안하고 구현해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시스템 분야는 다른 컴퓨터공학 분야에 비해 논문이 나오는 주기가 다소 긴 편이라, 첫 결과를 만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한 애착도 깊었습니다.
특히 이 논문은 제게 있어 단순한 연구 성과 그 이상이기도 합니다. 박사과정 1년 차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고, 저를 포함한 많은 유학생이 2년 넘는 시간 동안 재택근무와 고립된 환경 속에서 연구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현실감 없는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고, 사재기로 텅 빈 마트 진열장을 마주하던 날들, 타국에서 가족도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긴 시간을 버텨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시기를 유학생끼리 ‘잃어버린 2년’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버거운 시기였지만, 그 와중에 묵묵히 이어간 연구가 결국 논문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대학원을 입학하는 순간부터 저를 줄곧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제 무능함에 대한 불안을 이때부터 떨쳐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연구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끌어서 한때는 ‘애증의 주제’가 되어버렸는데, 막상 OSDI에 채택되고 나니 다시 애정만 남더라고요.
처음으로 국제 학회 무대 위,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했고, 거기에 실시간 데모 시연까지 준비했기 때문에 부담도 컸습니다. "라이브 데모를 한다"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학회장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Oh… Good Luck!”을 외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다행히 발표는 무사히 마쳤고, 논문에서만 보던 유명한 연구자들과 직접 제 연구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주고받는 경험은 기대 이상으로 훨씬 짜릿했습니다. 3년간 크고 작은 슬럼프를 겪고, 외롭고 답답하게 보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한순간에 롤러코스터처럼 치솟는 기분이었어요. ‘다들 이 맛에 연구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자랑하자면, 지난달에 열린 OSDI 2025에서도 1 저자로 또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돌아왔습니다.
▲ OSDI 2022
▲ OSDI 2025
| 긴 고민 끝에 학계가 아닌 인더스트리를 선택하셨어요. 구글 합격 수기에서 결정 이유를 자세히 다루기엔 내용이 방대하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여기에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진로를 결정할 때 늘 제 앞을 몇 년 먼저 걸어간 선배들을 많이 관찰해 왔어요. 특히, 똑똑하고 멋지다고 느낀 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유심히 보고 따라가려 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논문 실적도 많고 연구 성과가 좋은 선배들이 대부분 교수가 되는 걸 보면서 ‘교수가 좋은 길인가 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하게 됐죠. 하지만 그게 왜 좋은 건지에 대해서는 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고, 마치 정답만 아는 채 풀이 과정은 모르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선배들에게 ‘왜 교수가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물어보기도 했고, 박사과정 5년 내내 그 이유를 납득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끝내 저 자신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어요.
혹시 내가 인더스트리에 막연한 로망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해 보려고 했습니다. 한국 인더스트리, 미국 인더스트리, 유럽 학계, 미국 학계까지 정말 다양한 환경에서 인턴십을 해봤는데, 이렇게 ‘종류별로’ 다 겪어본 박사과정 학생은 흔치 않을 거예요. 그런데 경험해 보니 의외로, 인더스트리가 제게 훨씬 더 잘 맞더라고요.
예를 들어, 몇 년을 바쳐 작성한 논문이 최상위 콘퍼런스에 채택되더라도 실제로 세상에서 사용되지 않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봤어요. 제 학회 발표 영상도 조회수가 1,000회도 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제가 단 몇 달 동안 기여한 코드가 실제 대규모 서버에 배포되고, 수많은 사용자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경험이 정말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시스템 성능과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인더스트리에서 접할 수 있는 압도적인 자원과 스케일, 그리고 실질적인 임팩트가 특히 더 크게 느껴졌어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회사에서는 박사들이나 경력 많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교수가 되면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 연구해야 하잖아요. 지금은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 좀 더 기대되기도 하고, 그 환경 자체가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물론 이 선택이 100% 옳았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고, 사실 지금도 고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몇 년 뒤에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대한 것과 달리 실망하고 후회할 수도 있겠죠. 다만, 지난 몇 년간 정말 밀도 있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지금은 제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마주해 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 구글에 붙기까지 스크리닝, 온사이트 인터뷰부터 팀 매칭 인터뷰까지 거의 10차례에 달하는 과정을 거치셨어요. 긴 여정을 견디신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박사까지 마치면 더는 코딩 테스트를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구글 인터뷰에서도 여전히 그래프 탐색, 트리 순회 같은 알고리즘 문제를 풀어야 했고, 학부 저학년 때 배웠던 개념들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복습하고 연습해야 했습니다. ‘내가 이걸 또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솔직히 처음에는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인터뷰 준비에 생각보다 충분한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논문에는 1년 이상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졸업 후의 진로를 결정짓는 취업 인터뷰에는 일주일도 채 못 쓰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아쉬울 것 같았어요. 떨어지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인터뷰 준비에도 최선을 다해서 제 실력을 온전히 보여주고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논문 제출, 졸업 준비만큼이나 취업 준비에도 시간을 의식적으로 배분하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박사과정 중에 인터뷰 준비에만 집중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몇 달에 걸쳐 메인 업무 외에 주말이나 밤 시간을 투자하면서 꾸준히 준비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크리닝부터 온사이트, 팀 매칭까지 반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인터뷰 프로세스를 거치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는 않았지만, 준비한 만큼 제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던 점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 대학원 합격 후기를 쓴 이후 6년간 100명이 넘는 성대 후배들에게 상담, 첨삭 등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기억에 남는 후배 등 소중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대학원 합격 후기를 쓴 게 2019년인데, 그 글을 읽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을 주시는 후배님들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신기해요. 시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달에 3~5명 정도는 꾸준히 연락을 주셔서, 지금까지 대화한 분들이 사실 100명도 훌쩍 넘을 거예요. 장문으로 한두 번의 대화가 Q&A처럼 오가는 경우도 있고, 1~2년에 걸쳐 유학 준비 전반을 도와드리며 오랫동안 연락을 이어간 경우도 있어요. 그중에는 처음엔 후배로 상담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한국에 갈 때마다 꼭 만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각 주마다 제 멘티들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도 새삼 재미있게 느껴지곤 해요.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인데, 유학 가기엔 늦었을까요?’인데, 정말 해외로 나오실 생각이라면 사실 나이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서로서로 나이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각자의 배경이 다 천차만별이라 나이로는 경쟁이나 비교가 잘 안되거든요.
기억에 남는 후배는 정말 많은데, 한 분만 고르자니 어렵고, 모두 다 언급하기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몇 년 전의 제 모습이 떠오르는 분들과의 상담이 특히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꿈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한 마음에, 답장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면서도 조심스럽게 장문의 쪽지를 보내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저도 너무 잘 알거든요. 그래서 그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더더욱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고 싶고, 같이 고민하고 길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유학 상담은 사실 업체를 통해 받으면 꽤 큰 비용이 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대신 상담비로 에브리타임에 본인의 합격 후기를 남겨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일종의 다단계랄까요. 6년 전에 쓴 제 후기보다, 이제 막 따끈따끈하게 합격하신 분들의 후기가 훨씬 더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사실, 학계 대신 인더스트리를 선택하면서 마지막까지 가장 아쉬웠던 부분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성장을 함께 보고, 응원하고, 필요한 조언을 나누는 일 자체가 참 좋더라고요. 비록 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멘토링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 스브스뉴스 출연* 이후 공적인 매체에서 다시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시죠. 동문님을 롤모델로 삼아 해외로 나아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박수진 학우는 2021년, 정교한 필기체를 가진 성균관대학교 인간프린터로 스브스뉴스에 출연했다.
▲ 스브스뉴스 출연 영상(이미지 클릭)
스브스뉴스에는 연구나 진로와는 전혀 무관한 주제로 출연해서 사실 조금 민망했는데, 이렇게 다시 조금은 더 진지한 이야기로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2019년에 유학을 온 이후, 타지에서 적적할 때마다 에브리타임에 사는 얘기를 공유해 드렸는데, 이렇게 학교 웹진에도 소개되다니 성공적으로 대학원을 잘 마무리하는 것 같아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해외 진학이나 취업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분명 쉽지 않은 순간들도 마주하시겠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경험과 깊은 성장을 얻게 되는 여정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도 대학원… 꼭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