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KAPE - 오늘의 세균

  • 538호
  • 기사입력 2024.04.30
  • 편집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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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관수 의학과 교수



병원 커피머신이 세균 퍼뜨린다고?…반전의 연구결과

- <아시아경제> 2023년 12월 21일


병원 커피기계가 감염 확산의 잠재적 원인으로 일부 주목을 받았지만, 새로운 연구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21일 헬스데이뉴스(HealthDay News)에 따르면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의 임상 미생물학 및 병원 위생 연구소 소장인 사라 빅토리아 워커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병원에서 커피머신에 대한 일반적인 금지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결론내렸다. 독일 연구진은 25개의 자동 캡슐 커피 메이커와 에스프레소 머신을 면봉으로 채취했다. (……) 연구원들은 물받이, 배출구, 버튼, 물탱크 손잡이, 물탱크 내부 등 다섯 곳의 특정 장소에서 면봉을 채취했다. 연구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우선순위가 높은 'ESKAPE 병원균'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떤 세균이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세균일까? 인류가 비록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안톤 판 레이우엔훅 이후 불과 300년 남짓하지만, 역사 동안 많은 세균에 시달려 왔다. 그 가운데 특히 인류에게 공포를 선사한 세균을 들라 하면, 14세기 유럽 인구 1/3을 홀랑 가져가 버린 페스트균(Yersinia pestis)도 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를 몰락의 길로 이끈 장티푸스균(Salmonella enterica)도 있다. 18세기 이래 수 차례 팬데믹을 일으킨 콜레라균(Vibrio cholerae)도 있으며, 전쟁 때마다 출현하여 수많은 병사와 민간인들을 앗아간 발진티푸스의 원인균인 리케차 프로바제키(Rickettsia prowazekii)라는 세균도 무섭다. 아니면 매독균(Treponema pallidum)은 어떨까? 과거 문둥병, 혹은 나병이라 불리던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Mycobacterium leprae)은 어떨까?


모두 무서운 세균들이다. 그런데 정작 요즘 병원에서 의사들이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세균은 따로 있다. 바로 그 얘기를 앞으로 해보려고 한다.


2008년 4월 15일 자로 발간된 미국 감염학회지에 루이스 스톡스 클리블랜드 보훈의료센터(Louis Stokes Cleveland VA Medical Center)의 루이스 라이스(Louis Bernard Rice) 교수가 편집자 해설(Editorial Commentary)이란 형식으로 세 쪽짜리 논문을 발표한다. 해당 호에 실린 여러 중요한 세균들, 특히 항생제 내성 세균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러 논문을 종합한 해설에 해당하는 글로, 여기서 그는 이후로 거의 고유명사가 된 용어 하나를 제시한다. 바로 이 글 앞머리에 소개한 기사에 등장하는 ‘ESKAPE’라는 줄임말이다. 병원에서 점점 위협이 되어가는 여섯 가지 세균 학명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바로 다음과 같은 세균들이다.


Enterococcus faecium (장구균)

Staphylococcus aureus (황색포도상구균)

Klebsiella pneumoniae (폐간균)

Acinetobacter baumannii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

Pseudomonas aeruginosa (녹농균)

Enterobacter spp. (엔테로박터)


병원 내에서 감염을 많이 일으키고, 항생제 내성 때문에 치료가 힘들어 많은 사망자를 내는 세균을 이렇게 지목하고, 이에 대한 정부를 비롯한 각계의 관심과 대책, 지원을 촉구하는 글이었다. 이렇게 목록을 정한 것은 라이스 교수 단독의 결정은 아니었다. 미국 감염학회 소속의 여러 연구자와 의사 들이 대책팀을 만들고 오랫동안 논의한 결과였다.


루이스 교수는 논문에서 “ESKAPE 세균은 병원 감염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lion’s share)할 뿐만 아니라 병리 기전, 전염 양상 및 항생제 내성의 패러다임을 대표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렇게 몇몇 종의 세균만을 추리면서 ESKAPE라고 하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게 된 데에는 조금은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그게 전부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사람들의 인식과 그에 따르는 정부와 연구 기금 등의 지원 문제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극적인 데에 더 많이 쏠리는데, 에이즈나 에볼라와 같은 데에 갖는 공포심과 관심에 비하면 일반적인 세균 감염과 이들 세균의 항생제 내성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떨어져 있었다. 공공기관의 자금 지원도 적었다. 커다란 제약회사에서도 항생제 개발을 줄이거나 포기하고 있었다. 2004년 미국 감염학회가 <Bad Bugs, No Drugs>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해서 각계에 배포하고 항생제 개발을 호소한 것과 맥락에서 이어진 것이 바로 치료 대상으로 집중해야 할 세균의 지정과 이들에 대한 명명, 즉 ESKAPE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항생제 개발을 독려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 비슷한 일환으로 만들어진 용어였고, 세균의 종류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 세균들은 이후 연구자들은 물론, 임상 의사, 감염 관리 관계자, 보건 정책 담당자, 항생제 개발 제약회사 등에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물론 이 세균들만이 오늘날 감염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세균 감염의 문제를 다소 단순화한 문제점이 없지 않고, 특정 세균이 왜 들어갔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었다. 특히 엔테로박터라는 세균이 여기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새로 리스트를 작성해서 아예 ESCAPE라는 약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ESCAPE는 E. faecium, S. aureus, Clostridium difficile, A. baumannii, P. aeruginosa, Enterobacteriaceae는 약자인데, 엔테로박터(Enterobacter spp.)를 빼고, 씨디피실레가 들어가고, K. pneumoniae는 물론 대장균(Escherichia coli) 등의 세균을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Enterobacteriaceae를 포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과녁이 정해지면서 각 분야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한 지침도 어느 정도 분명해졌다. 그래서 이후 ESKAPE는 진짜 용어가 되었고, 논문은 물론 연구과제 공고에서마저 쓰이면서 고유명사가 되었다. 바로 ‘오늘의 세균’이 된 것이다.



<참고문헌>

Rice LB. Federal funding for the study of antimicrobial resistance in nosocomial pathogens: no ESKAPE. J. Infect. Dis. 2008;197(9):1079-1081.

Stagnates AAD. “Bad Buds, No Drugs”. IDSA, 2004.

Peterson LR. Bad Bugs, No Drugs: No ESCAPE Revisited. Clin. Infect. Dis. 2009;49(6):992-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