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의 적정심리학 – 『당신이 옳다』

  • 539호
  • 기사입력 2024.05.12
  • 취재 이주원 기자
  • 편집 오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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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사회에서 살아가며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이자 동시에 아주 어려운 일이다. 공감으로까지 가는 과정은 마치 많은 수의 허들을 넘는 것과 같아서 자칫하면 방향을 잃거나 잘못된 길로 가기 십상이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는 자신을 지키며 남에게 공감하는 길을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나’와 ‘너’를 동시에 공감하는 일이 공감의 본뜻임을 강조하는 저자 정혜신은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기업 CEO와 정치인, 법조인부터 트라우마 현장 속 피해자들 타인까지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치유공간 이웃’을 만들고 참사 피해자들의 치유에 힘쓰기도 했다. 저자는 정신의학 전문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인들을 도울 수 있는 치유법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서로는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사람 vs 사람』 등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대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례들 속 이야기와 함께 저자가 소개하는 ‘당신이 옳다’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자.



| 프롤로그: 소박한 집밥 같은 치유, 적정심리학


적정 기술은 최첨단 과학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에 간단하고 일상적인 기술의 결핍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기술이다. 저자는 이 개념이 심리 치유 현장에서의 문제의식과 맥이 닿아 있다고 느꼈다. 트라우마 현장 속 피해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심리 치유 전문가 자격증이 아니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들게 하는 사람들의 태도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적정 심리학’이라는 표현은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소박한 심리학을 나는 ‘적정 심리학’이라 이름 붙였다.”



| 왜 우리는 아픈가


진짜 ‘나’가 흐려지게 되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자기성(自己性)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 자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역할, 가치 등에 지나치게 기대어 살아서는 안 된다. 절대적 의존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 절대적인 자신의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일이 없어지고, 자기 소멸의 결과로 공황발작과 같은 증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저자는 존재의 개별성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이 속한 무리의 속성으로 개인을 인식하는 것은 유일성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상대를 덮고 있는 겉면이 아니라 진짜 알맹이에 주목하고 다가가는 것이 상대의 본질을 유지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여기서 본질 즉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이 말은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와 같은 의미다. 상대의 정서적인 지지자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혼란한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났을 때 그 행동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라 혼란한 마음을 짚어주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이며 사람 마음을 대하는 예의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 심리적 CPR: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쓰러져 심장이 멈춘 사람에게 CPR을 실시하듯이 ‘나’라는 존재가 거의 지워져 자기 소멸에 이른 사람을 만난다면 ‘나’가 또렷하게 돌아올 때까지 ‘나’를 자극해서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심폐소생술에서 심장 외 다른 장기들은 제쳐놓고 오로지 심장에 집중하는 것처럼 심리적 CPR 또한 ‘나’처럼 보이지만 ‘나’가 아닌 것들은 제쳐놓고 ‘나’라는 존재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 공감: 빠르고 정확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


“문이 존재 자체라면 문고리는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이다. 공감은 그 문고리를 돌리는 힘이다.”


꼭꼭 숨겨져 있는 속마음 속 상처를 보여주고 싶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과거의 상처에 주목하기에 앞서 현재의 감정을 먼저 알아주는 것이다. 말하는 당사자는 괜히 그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닌지, 이야기를 듣는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는 않을지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상처에 공감하는 것보다 그 얘기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 불안에 공감한다는 표현을 먼저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불안은 말하는 당사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더 생생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단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과거의 복잡한 감정을 꺼내기 전에 이야기를 얼버무리거나 말을 돌려버릴지도 모른다.



| 경계 세우기: 나와 너를 동시에 보호해야 공감이다


공감이란 ‘나’와 ‘너’를 동시에 공감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때 ‘나’와 ‘너’ 사이의 경계는 항상 분명해야 한다. 상대의 고통과 자신의 상처가 뒤섞이거나 공감에 대한 강박이 생기면 공감의 상호성이 사라져 버린다. 상처 있는 상대를 도울 때 그 사람에게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런 마음은 그럴 만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다. 어떤 마음 때문에 자신이 그런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지 자신을 책망할 일이 아니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자신의 속마음도 누군가는 알아줘야 그 후에 다른 사람에 대한 홀가분한 공감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경계에 민감한 사람이 공감도 더 잘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상대방을 공감한다고 할 때의 그 대상이 상대방 존재 자체와 그의 마음이라는 점이다. 그 마음으로 인한 잘못된 행동이나 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나친 헌신은 사람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대로 계속 만나야 하는 사이인데 그런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이 잘못됐다. 상대를 상수로 놓고 자신을 변수로 취급하는 불평등한 구도 안에서는 자신이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 공감의 허들 넘기: 진정한 치유를 가로막는 방해물


공감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많은 허들 중 대표적인 허들은 감정에 대한 통념이다.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건강한 불안과 건강한 혼란도 있을 수 있다.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성찰하는 과정에서 겪는 혼란은 건강한 혼란의 예다. 성찰은 자신에게 집중 또 집중하여 마음의 구석구석을 거울로 비춰주는 것, 즉 자기에게 주목하고 공감해 주는 과정으로 인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안은 심리적 토대를 더 튼튼하게 한다. 자신을 보호하는 성찰인 것이다.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까지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만나야 하는 숙제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문제를 해결하며 한고비 한고비 넘는 스무고개 같은 길이다. 하지만 쪼개졌던 내 심장의 일부를 찾는 뜨거운 설렘과 횡재의 길이기도 하다.”


허들 중 가장 흔히 만나는 허들은 집단 사고다. 한 존재의 심리적 형태를 집단의 특성에 가려 두루뭉술하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로 묶어서 보는 시선으로는 개별적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공감은 한 사람의 외형적 무엇이 압도되지 않을 힘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 공감 실전: 어떻게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실제로 공감을 시도했을 때, 어디까지 공감해야 하는지 어려움을 겪고 지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해되지 않는 걸 수용하고 공감하려 애쓰는 건 공감에 대한 강박이며 공감이 아니라고 저자는 날카롭게 단언한다. 잘 알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는 아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때, 질문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내린 진단과 판단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의 틈이 있어야 한다. 공감은 상대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에 대해 ‘그럴 수 있겠다’ 정도의 수용 및 이해되는 상태다. 그 상태가 되면 상대방의 감정이 어떤 결을 지니고 있는지 더 잘 알고 끄덕이게 된다. 타인을 공감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가 자극돼 떠오르고 뒤섞여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때의 혼란은 자기 치유와 내면의 성숙을 위한 통과 의례 같은 반가운 혼란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종류이든 혼란은 힘들다. 에너지 소모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나에 대한 혼란은 반가운 손님이며, 혼란에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감정, 마음에 대해 평가 내리지 않는 것이다. 상대가 제일 절박하게 가지고 있는 마음은 자신으로서는 전혀 동의하기 어려운 마음이라도, 상대의 마음은 옳다 그르다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것처럼 숨 막히는 고통과 상처 속에서도 공감이 몸에 밴 사람은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책의 도입부, ‘읽은 이에게’ 파트에서는 이 책을 ‘공감’ 행동 지침서라고 소개한다. 한 장 한 장 깊은 통찰과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상처 입은 사람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을 읽고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 진정으로 다가가는 법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한권의 책, 『당신이 옳다』를 추천한다.

 

 ▲ 정혜신 작가